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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광화문 연가> 임병근 - 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No.91]

글 |이민선 사진 |심주호 2011-04-11 5,277

일주일 전에 만난 사람을 떠올려본다. 정지된 이미지로든 움직이는 실체로든 마주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의 이목구비와 표정이 눈에 설다. 인터뷰 전에 습득한 자료들이 하나의 평균적인 실체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한 사람의 얼굴에서 다양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이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이미지로 귀결되지 않는 낯선 배우를 만나는 일은 호기심보다는 난처함을 수반한다. 어쨌든 상상이 아닌, 팔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진짜 임병근을 만났다.



헌칠하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앙상블 배우들 사이에 묻혀 있어도 눈에 띌 만큼 큰 키에, 잘 다듬어서 배열해 놓은 이목구비를 가진 임병근은 쉽게 말해 준수하게 생겼다. 언급한 수식어들을 모아보자면 분명 시선을 사로잡을 외모인데도, 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보호색을 입은 것마냥 주변과 잘 섞여 있었다고 말하면 실례일는지.


임병근은 대학에서 한국적인 음악극을 지향하는 전공을 이수하고 2009년에 서울예술단에 입단했다. 친구가 권유해 동반 참여한 오디션에서 친구는 떨어지고 그만 합격했다는 에피소드나 중고교시절 농구 선수를 꿈꾸다가 우연히 보았던 연극 한 편이 자신을 배우의 길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조금 고전적이지만, 그래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스스로도 그런 사연의 주인공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지만, 그는 지난 십여 년간의 행보를 이야기할 때 조금의 들뜸이나 꾸밈이 없었다. “고 1때… 대학 졸업반 때… 그때 누구나 다 그런 고민을 하잖아요” 라고 운을 뗀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저 그 당시에 할 법한 고민을 했고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결과였다는 식이다.
오랜 경력을 지닌 선배들과 함께하는 서울예술단의 3년 차 막내 단원인 임병근은 <15분 23초>, <바람의 나라>, <청 이야기> 등에서 주연을 맡곤 했지만, 공연 횟수가 적은 탓에 많은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리지는 못했다. 그러니 서울예술단의 허락으로 외부 공연에 참여해 경험의 폭을 넓힌 것은 그에게 분명 좋은 기회이다.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를 엮은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서 그는 현우 역을 맡아 윤도현, 송창의, 김무열, 리사, 양요섭 등 잘 알려진 이름들 사이에 아직은 생소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큰 무대에서 신인 배우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데 행운 이상의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면, 그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것이다.
인터뷰 내내 답변이 길지 않았던 조용한 배우는 <광화문 연가>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을 풀어 놓았다. 솔직하고 당당한 성격으로 내 앞의 사랑을 놓치기보다는 끌어안으려는 현우 역을 연기하는 것이 그와 김무열의 몫이다. 상대적으로 무대 경험도 많고 인지도도 높은 김무열과의 더블 캐스팅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감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서려 있다. 김무열은 현우가 가진 밝고 쾌활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그에 비해 임병근이 연기하는 현우는 진지하고 진실 되게 상훈과 여주를 바라보고 있다. “많이 배우고 있어요. 배우마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거죠.” 일견 재미없는 모범생 같은 말이지만 그가 지금 지녀야 하는 가장 건강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느꼈던 심리적 위축보다는 무대에서의 책임감에 무게를 두고, 연습 과정에서의 힘듦도 묵히지 않고 털어버리는 현명함을 갖췄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앳된 얼굴을 하고선 덤덤하게 어른스런 답변으로 연상의 상대를 놀라게 한다.

 


출발선의 발자국이 아직도 선명할 만큼 걸어온 길이 길지 않은 배우에게 그가 선택한 길에 만족하냐는 질문이 우문이었을지 모르겠다. 준비한 멘트는 아니지만 그가 늘 마음에 품었을 생각이 현답으로 돌아왔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가끔씩 텅 빈 무대 위를 걸어 다녀요. 내가 오늘 여기서 공연을 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면서요. 관객들의 박수 소리, 나를 비춰주는 조명으로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요. 연습은 힘들지만 무대에서 나를 보여주었을 때, 내가 배우를 선택하길 잘한 것 같고 또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끝까지 그의 목소리는 야단스럽지 않고 평온하다. 말이나 행동이 튀지 않는 것, 상대방의 질문을 유심히 듣고 그에 맞는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 것. 그는 관객들의 눈에 들었다가 반짝하고 사라지기보다 어디서든 꾸준히 제 몫을 다할 것 같다. 이래서 은근한 매력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야 그의 얼굴을 제대로 알 것 같다. 평소에는 순한 강아지처럼 말 잘 듣게 생겼지만, 어린 고양이처럼 히죽 웃을 때나 무표정에 날카로움이 묻어날 때는 또 다른 얼굴이다. 배우에게 이미 보여준 얼굴보다 앞으로 보여줄 모습이 더 많다는 것은 분명 복이리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1호 2011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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