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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썸씽 로튼> 번역가 황석희 , 멜로디까지 번역하다 [No.189]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9-06-11 9,645

<썸씽 로튼> 번역가 황석희 , 멜로디까지 번역하다 

 

영화 <데드풀>로 황석희 번역가는 ‘약빤 번역’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대중들에게 알려졌지만 그는 이미 여러 편의 예술 영화나 음악 영화에서도 뛰어난 작업을 남겼다. <데드풀> GV에서는 감성적인 번역을 추구하는 <캐롤>의 번역가로, <캐롤>의 GV에서는 유쾌한 자막에 능한 <데드풀>의 번역가로 소개되는 다재다능한, 그리고 최근 가장 핫한 영화 번역가 황석희가 뜨거운 작품 <썸씽 로튼>의 자막을 책임진다. 

 


 

뮤지컬 자막에 도전

뮤지컬 번역은 <썸씽 로튼>이 처음입니다. 참여하게 된 계기라면? 평소에도 뮤지컬 번역에 관심이 있었어요. 나중에 기회 되면 해봐야지 하고 있는데 제작자인 신재홍 대표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자막을 번역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인상적으로 보셨대요. 그래서 번역가도 찾아봤는데 코미디 번역으로 더 유명한 걸 알고 놀라셨대요. <썸씽 로튼>은 다른 뮤지컬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제작해보고 싶어서 제게 먼저 연락을 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뮤지컬 자막을 작업해 본 소감은 어떤가요? 엄청 재밌기도 한데 첫 작품이 너무 어려운 작품이어서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썸씽 로튼>은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대사가 하나도 없어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상당히 많은 대사를 인용했어요.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고 단어나 표현을 약간씩 바꾸는 식으로 패러디했어요. 왜 이 단어를 썼을까 조금 이상해서 찾아보면 인용구인 경우가 많았어요. 대사의 30%가 그랬어요. 제가 못 찾아낸 것도 있을 거예요.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내용을 찾아내는 것이 여간 일이 아니었겠어요. 전자책이 없었으면 아마 이번 작업을 못했을 거예요. 이번 작업 하면서 전자책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샀어요. 문장 하나만 가져다 썼어도 원작을 확인했어요. 막상 살펴보면 별거 없을 때도 많은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원작을 찾아서 번역을 해도 사실 관객들이 알아채기 쉽지 않잖아요. 때로는 너무 디테일한 정보 제공이 오히려 의미를 모호하게 하기도 하고요. 정보에 대한 수위 조절은 어떻게 하나요? 영화 작업에서도 그게 항상 딜레마예요. 팬층이 만족하는 수위와 대중들이 편하게 느끼는 수위 사이에서 갈등하죠. 모든 관객들이 알아듣게 하는 게 중요해요. 어려워도 이 부분만은 꼭 전달해야 한다는 부분이 꽤 있어요. <썸씽 로튼>의 경우 셰익스피어를 아는 분이면 저거 어느 작품의 대사라고 알 수 있을 거고, 아무런 정보가 없는 분이 보아도 “아, 저런 대사는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나왔겠구나” 정도의 뉘앙스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의미 전달만 하는 식으로 쭉 풀면 이 작품의 매력이 사라지니까요. 
 

영화와 뮤지컬은 상영되는 환경 차이 때문에 자막 작업에서도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썸씽 로튼>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라이온 킹>을 봤는데 굉장히 좋은 자리를 주셨어요. 그런데 자막 보는 각도가 좋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와이프랑 같이 갔는데 와이프는 신났죠. 근데 저는 공부를 하러 간 거라 공연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제일 길게 나온 자막은 스페이스 포함해서 몇 자인지, 몇 초까지 보이는지, 기본 형식을 배워야 하니까요. 영화 번역은 무조건 두 줄인데 여기서는 세 줄, 네 줄도 많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네 줄이 넘어가면 시선을 너무 많이 뺏기니까 어지간하면 두 줄로 하고 정 안 되면 세 줄로 하자는 원칙으로 작업했어요. 그런데 리허설 때 자막 오퍼레이터분과 조정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번역의 갑, 코미디

코미디는 자막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행동이 지나갔는데 자막이 늦게 나오거나, 자막이 미리 나와서 산통을 깨는 것도 문제죠. 맞아요. 어순과 자막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해요. 배우가 어떻게 연기 하느냐에 따라서도 굉장히 달라져요. <썸씽 로튼> 자막 작업을 위해 처음 받은 영상과 이번에 내한할 배우라고 받은 영상에서 배우의 호흡이 달랐어요. 앞선 영상의 배우분은 죽 끌다가 목적어를 뒤에 말해서 강조했거든요. 자막에서도 두 개로 나눠서 그 느낌을 살려주었죠. 나중 영상의 배우는 이 부분을 다다다다다~ 한꺼번에 쭉 말씀하시는 거예요. 리허설을 봐야 자막이 제대로 자리 잡을 것 같아요.

 

같은 배우라도 공연 할 때마다 조금씩 달리 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애드리브도 하고요. 그러니까요. 자막 생각은 안 해주고 걱정입니다.
 

병맛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 <데드풀> 번역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생기는 코미디 번역의 특성이 있나요? 앞서 말한 대로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어순이 반대이기 때문에 언어적인 한계는 있어요. 그걸 얼마나 적절하게 극복하느냐가 번역가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예요. 그리고 코미디 번역은 기본적으로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해요. 저는 웬만한 인터넷 커뮤니티는 다 들어가거든요. 영화 관련 커뮤니티는 물론 뜨거운 게시판은 거의 다 들어가요. 요즘 어떤 이슈가 뜨고 있고, 지금 젊은이들이 어떤 말투를 쓰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그것을 자막에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지만 뉘앙스는 학습할 수 있거든요. 번역가마다 잘하는 장르가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코미디 작업이 쉬운 편이에요. 제가 사용하는 코드들을 아직까지는 관객들이 좋아해 주세요.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으면 관객들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는 통하는 면이 있어요.
 

홈페이지를 보니 관객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그로 인한 피로도 고백하셨지만요.  예전에는 피드백 메일 계정을 별도로 마련해서 받아보았는데 지금은 막아놓고 제가 찾아보고 있어요. 번역 관련 코멘트들이 올라오면 틀린 점은 없는지 확인해요. 어떤 자막을 관객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는 게 중요해서 꾸준히 체크하고 있어요. 
 

<썸씽 로튼>은 셰익스피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입니다. 시대물에 현대적인 감각의 유머 코드를 넣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화 자막 할 때도 유행어를 쓰진 않았어요. 젊은 친구들의 말투를 볼 뿐이지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아요. 요즘 많이 쓰는 “핵 쩌는” 이런 표현들을 자막으로 안 써봤어요. 이번 자막 작업에서도 중간에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런 요구가 꽤 있는 거예요. 이 단어를 써서 빵 터진다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거든요. <썸씽 로튼>은 요즘 언어를 써서 웃기기보다는 대사 자체가 웃긴 게 많아요. 라임으로 웃긴다거나. 그거 아니어도 충분히 웃길 수 있어요. 

 


 

운율마저 번역하다

노래 가사도 번역을 해야 하는데요. 의미만 전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성을 담아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워너뮤직의 가사 번역 작업도 하는데요. 가요는 라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영미권에서는 라임을 못 쓰면 송라이터로 인정하지 않아요. 가사의 경우 라임까지 번역하자는 주의여서 이번 뮤지컬 작업에서도 할 수 있는 한 라임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뜻을 온전히 옮기면서 완벽하게 라임을 반영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이거든요. 라임이나 펀(Fun, 언어유희)이 나올 때 그걸 살리지 못하면 번역가로서 패배감이 들어요. 제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라임을 번역해 두었어요. 반복 관람하시는 분은 그런 점을 살펴보시면 새로운 재미가 될 거예요. 
 

우리말은 라임이 강하지 않아서 번역가 중에는 이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작가 이야기고, 작품 중 라임이 소재로 등장한다고 하니 라임 번역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한 단어 놓고 한 시간을 있기도 하고 노래 번역이 가장 어려웠어요. 하품의 라임을 찾아야 한다면 하품과 같은 라임일 것, 원작의 의미가 통할 것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잖아요. 비슷한 단어를 떠올려 보는데 제가 찾는 게 그 안에 없을 때는 자괴감이 들죠. 하품 라임은 아픔으로 했던 것 같네요.
 

가사도 일종의 대사잖아요. 라임과 의미가 맞아도 그 사람이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는 없잖아요.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작업도 하셨는데요. 차이가 있나요? 사실 다르지 않아요. 가사 자막에 운율까지 맞출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도 저는 가급적 운율을 맞추려고 해요. 워너뮤직 작업을 할 때 “가사를 읽고 있으면 한글로 노래하는 게 들린다”는 댓글을 받았는데 이런 댓글을 굉장히 좋아해요. 운율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거든요. 완벽하지 않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도 운율을 꽤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썸씽 로튼>에는 셰익스피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뮤지컬 패러디도 있는데요. 제가 뮤지컬을 많이 보지 못해서 잘 알지 못해요. 다행히 이 작품은 한 지가 꽤 되어서 관련된 레퍼런스를 정리해 놓은 기사나, 팬들이 쌓아놓은 아카이브들이 꽤 있어요. 다른 뮤지컬의 패러디인 경우 찾아듣고 최대한 패러디한 작품의 운율이나 느낌을 맞추려고 해요. 
 

제목을 왜 ‘썸씽 로튼(Something Rotten)’으로 정했을까요? 후반부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 중에 ‘썸씽 로튼’이라는 곡이 있어요. 오믈렛을 소재로 뮤지컬을 만들거든요. 이때 썩은 달걀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 나오는 표현이 “Something Rotten”이에요. 나 자신답게 살아야 한다는 주제를 담은 표현이에요. 이 작품은 나 자신답게 살지 못하고 간교한 선택을 해서 썩은내가 나는, 그런 사람들을 조소하는 것 같아요. 
 

쓰신 글 중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서 번역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어요. 그때 힌트가 되는 것이 반복 어휘, 표현이라고 했는데요. 이 작품에는 어떤 단어가 그랬나요? 이 단어를 쓰지 않고 다른 단어를 쓰는 경우가 있어요. 이 작품에서는 청교도인이 “저 사탄의 자식들이 만든 작품(Invention)을 보세요.”라는 대목에서 ‘Creation’이라고 하지 않고 ‘Invention’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Creation이 ‘창의적인 결과물’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단어라면 Invention은 ‘공상으로 만들어낸 잡것’ 같은 의미가 있잖아요. Invention이라고 썼기 때문에 그냥 창작물이라고 쓸 수는 없는 거죠. 공상물이나 망상물이면 몰라도. 
 

홈페이지에 가보니 소개 글에 “좋은 남편, 좋은 번역가가 꿈입니다.”라고 되어 있던데요. 좋은 번역가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가는 원작자의 의도를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파악해서 충실히 옮기는 전달자라고 생각해요. 
 

충실하게 옮기는 방법에는 의역도 있고 직역도 있을 텐데요. 어떤 것을 더 선호하나요? 제가 선호하는 번역은 직역이에요. 직역이긴 한데 아주 구어체로 자연스러운 직역이에요. 직역이라고 하면 보통 번역투를 생각하세요. 전 자막을 다루는 사람이잖아요. 자막은 글이 아니라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역으로 모든 것을 담아놓되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 자연스러운 직역이 궁극적으로 제가 추가하는 번역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9호 2019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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