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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생각을 해> 조휘 [No.97]

글 |김유리 사진 |이맹호 2011-10-31 5,571

 

잊고 있던 시간에 리듬을 담아

 

<돈 주앙> 이후 2년여, 동서양을 오가는 시대극에서 묵직한 역할을 주로 맡아온 조휘가 오랜만에 한층 밝고 가벼운 작품에 얼굴을 내밀었다. 1990년대 소녀들의 마음을 휩쓸었던 원태연 시인의 시로 만들어진 감성 뮤지컬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생각을 해>(이하 <넌 가끔>)에서 첫사랑을 잊지 못한 순정남 김철수로 돌아온 그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오랜만에 가볍고 밝은 작품에 출연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유쾌해 보인다. <돈 주앙>, <클레오파트라>, <영웅>, <몬테크리스토>, <왕세자 실종사건>,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까지…. 주위에서 ‘또 사극이냐’고 하더라.(웃음) 그것도 나를 각인시키는 과정이니까 상관은 없었다. 다만 캐릭터에 잘 빠지는 스타일인데, 최근 몇 년간 선이 굵고 고저가 확실한 캐릭터를 맡다보니 점점 스스로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조금 쉬어가야 하는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유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사람이 별로 없거나 혼자 있을 땐 착 가라앉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것, 유쾌한 것을 좋아한다. 


<넌 가끔>은 워크숍부터 참여한 창작 작품이다. 평소 창작 작품에 관심이 많나? <돈 주앙>을 기점으로 내게 어느 정도 작품 선택의 여지가 생기게 되었고, 창작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역할에 나만의 숨을 불어넣어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김규종 연출가님과는 <돈 주앙> 이후 두 번째 작업인데, <넌 가끔>의 창작팩토리 워크숍 공연을 내게 제안했다. 그 후 1년 동안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도 많이 하고 그게 공연까지 왔다. 평소에도 워크숍에서 시작해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 얼마 전에 <모비딕>의 정예경 작곡가와 <삐딱구두 스캔들>이라는 워크숍 작업도 했는데, 이뿐 아니라 이나오, 윌 애런슨 등 내 또래의 젊고 실력 있는 창작자가 많다.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어서, 그리고 나눌 수 있어 좋더라.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한 걸로 안다. 철수의 어린 시절에 본인의 이야기가 녹아든 건가? 그건 아니다. 원태연 시인이 실제로 고등학교 때까지 사격 선수였다고 들었다. 대학에서 선수를 하다가 그만두게 되었고, 이후 시를 쓰게 되었단다. 나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깜짝 놀랐다. 주인공이 대학 때 운동선수였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원태연 시인의 이야기, 나도 육상 선수로 체육교육과에 간 건데, 결국 배우를 하고 있지 않나. 굉장한 인연이라 생각했다.


원태연 시인의 시는 원래부터 알고 있었나? 사실 이 작품을 하면서 제대로 보게 되었다. 쉬워서 좋았다. 보통 시라고 하면 의미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잖나. 일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개념과는 달랐다. 편하고 좋았다. 이분은 자신이 했던 경험을 글로 적었고, 그럼으로써 그 당시의 시간을 뚝 떼어 그 안에 생각을 박제해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뮤지컬로 만드니 그 시간에 리듬을 넣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 아닌가. 그 자체가 이 작품의 큰 매력인 것 같았다. 

 


시가 총 14편이 쓰였는데,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면? 마지막에 철수와 영희가 만나 오해를 풀고 함께 부르는 ‘욕심2’란 시가 좋다. ‘단/한번만이라도 듣고 싶다고/당신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을/단/한번만이라도 보고 싶다고/당신 눈에 비친 내 얼굴을’ 연인과 헤어진 후 한번쯤은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낮다. 그래서인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워크숍, 쇼케이스 공연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현재 공연에서 강조된 것은? 많이 바뀌었다. 처음 창작팩토리 워크숍 공연을 할 때는 전반적으로 철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어린 시절의 철수와 영희, 그리고 현재의 영희 캐릭터가 보조적인 역할이었다. 쇼케이스를 거쳐 본 공연으로 가면서 네 명의 분량이 적절히 조정되어 동등한 비중으로 조정이 되었다. 현재와 과거의 오버랩이 많아졌는데, 이는 과거에 서로 터놓고 다가가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했던 부분들을 좀 더 많이 보여주게 되면서 현재의 철수와 영희의 심리에 다가가기 위한 연출가님의 의도였다. 결과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캐릭터들이 융화가 잘 되어서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것 같다.


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첫사랑이 생각나기도 했을 것 같다. 그렇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넘어가던 때, 다른 학교 아람단 친구였다. 다른 학교랑 함께 야영을 가면 볼 수 있었는데, 그때 내 목소리가 커서 단장을 맡아 전체 구령을 외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정말 우리 공연에 나오는 얘기처럼 어쩌다가 집 전화번호를 받아서 전화를 걸고, 어머니가 받으면 끊고, 직접 받으면 ‘다음 주 일요일에 어느 공원에서 만나자’ 약속했다. 만나서는 손도 못 잡고, 잡을까 말까 그러다가 괜시리 손에 땀만 배고.(웃음) 어린 철수를 통해서 그때의 나를 보게 되더라. 당시에만 할 수 있었던 행동들이 있잖나. 그게 참 잘 묘사되어 있다. 요즘 스펙터클한 뮤지컬도 많지만, 난 이 작품이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참 좋다.


<넌 가끔>이 마냥 닭살스럽거나 웃긴 공연은 아니었다. 그렇다. 아련하고 짠하다. 일에 치여 살다가 옛날로 시간 여행을 떠나 한 페이지씩 스쳐 지나가며 그땐 이랬는데, 그걸 왜 못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이 공연이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와는 조금 다른 공연이다. 막 웃겨야겠다거나, 울려야겠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기막힌 반전이 준비된 작품도 아니다. 잊고 있었던 소소한 감정들을 하나씩 일깨워주는 공연이다. 선선한 바람 불 때 마로니에 공원에 와서 시집 한 권 읽고 간다 생각하고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


극 중 김철수와 이영희처럼 아람단 그녀를 다시 만났다면 어땠을까? 만났다. 고등학교 때 한 번, 대학 들어가서 한 번. 고등학교 때 우연히 삐삐 번호를 알아내서 한 번 만났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안숙선 명창의 ‘국악 뮤지컬’을 3층에서 함께 봤다.그때까지 내 마음에 감정이 좀 남아 있더라. 하지만 학교도 멀다보니 또 연락이 끊겼다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 만났다. 근데 그 감정이 아니더라.

 


어린 시절의 사랑과 현재 사랑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보통 남자들이 철이 늦게 들잖나. 어린 시절엔, 여자 친구가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반면 나는 좋아하는 마음은 있지만 절실한 마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평생을 함께해야 할 운명적인 대상이 나타난다면, 놓치고 싶지 않고 올인 할 수 있을 것 같다.


철수가 처음 실패를 경험했을 때, 여자 친구를 부담스러워하면서 헤어지게 되는데,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또 한번 좌절하지 않나. 남자들의 심리가 그런가? 모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공감이 간다. 남자라면 내 여자를 위해서 좋은 모습, 훌륭한 모습, 잘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나. 어린 시절에 한 번 실패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외적으로 보이는 조건들은 다 갖춰졌다고 생각해서 잘 보이고 싶었는데 또 한 번 좌절하게 되잖나. 내게 주어진 기회는 끝났구나, 다시 멀어지면 또 볼 수 없으니까 좌절감에 회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영희가 철수를 일으켜 세우며 “네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조건이 아니라 네가 가지고 있는 너의 모습이 좋아서다”라 하니 철수는 용기를 얻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라는 사람이 너라는 사람과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소통하고 있는가’인 것 같다. 결국 이것이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랑의 정의가 아닌가 싶다. 


홈페이지에 ‘하고 싶은 거 하니까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쓰여 있더라. 행복한가? 막연하게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해도 잘 안 됐을 때를 거쳐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표현해낼 수도 있어 지금 참 행복하다. 이게 얼마나 유지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늘 그래왔듯 다음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가고 있으니 계속 꿈을 꾸는 한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에게 내가 고민하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보여주면 앞으로 몇 년간은 계속 행복하게 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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