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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넥스트 투 노멀> 남경주·박칼린 [No.99]

글 |김영주 사진 |심주호 2011-12-09 6,674

 

가장 보통의 정상적이지 않은 이들에게

 

한 부부가 있다. 아들과 딸도 있다. 액자 속에서 그려놓은 듯 웃고 있는 단란한 가족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라면? 병마가 앗아간 어린 아들을 차마 가슴에 묻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한 해, 또 한 해 키우는 어머니, 그런 아내를 지켜야 했던 남편. 이 쉽지 않은 상황의 부부를 함께 연기하게 된 박칼린과 남경주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앞에서 만났다. 첫 프레스 시연회가 있는 날이었지만, 사실 두 사람이 첫 호흡을 맞춘 것은 사흘 전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의 축하 무대에서였다.

 

 

공중파 생방송으로 첫 무대에 섰는데 괜찮으셨어요?
박칼린  정말 재밌었어요. 좋은 작품이니까. 그런데 처음은 아닌 게, 전 원래 무대 위에서 시작을 했으니까  스태프로 지내는 20년 동안 비웠던 곳으로 돌아간 거예요. 그동안 음악감독으로든 연출로든 계속 큰 그림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 버릇을 버리고 내 것에 집중하는 몸으로 바꾸는 게 힘들었어요. 그 외의 다른 점들은 뭐, 작품이 워낙 좋아서 괜찮아요.


캐스팅 소식에 놀란 사람들이 많았어요. 어떻게 결정이 된 일인가요.

박칼린  <넥스트 투 노멀>을 뉴욕에서 보고 와서 한 인터뷰에서 저 작품이면 배우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한참 전의 기사가 박용호 대표 귀에 들어간 모양이에요. 그래서 연락을 받고, 오디션을 봤죠.

 

그런데 하고 싶다는 것과 진짜 하는 건 다른 일이잖아요.
박칼린
 완전히 다르죠.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할 때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진짜 같이 작업을 하자고 연락을 해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영화를 보면서 ‘와, 저 역할을 해보면 진짜 재미있겠다’라고 생각을 할 때나, 어떤 천을 보고 ‘이 원단이면 이런 옷을 만들면 좋겠다’라고 그려보는 것처럼 상상을 해보게 만드는 것들이 있죠. 나이가 마흔쯤 되는 여배우라면 누구라도 욕심이 날 만한 역할이거든요. 남자로 치면 팬텀 같은. 작품이 참 괜찮은데 한국에서는 누가 이 역을 하게 될까, 재미있겠다는 생각까지가 끝이었어요. 정말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죠.


그런데 정말로 제의를 받았어요. 그 순간의 고민이나 망설임은 어떤 것이었나요?
박칼린
  음역대가 맞나? 그런 테크니컬한 것에 대한 생각이 제일 먼저 짧게 지나갔죠. 그다음에는 스케줄. 그리고 이분들이 쉽게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가 저를 쓰는 모험을 가볍게 결정하겠어요. 저한테 그 제안을 하기 전에 이분들이 오래 고민을 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저도 신중하게 받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렇게 결정을 한 다음에는 그냥 제가 해야 할 일을 똑바로 하면 되는 거고요.


연출가, 음악감독으로서 작업을 해왔던 경험이 배우로서 연기할 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나요?
박칼린
  내가 배우들에게 늘 강조해서 이야기해왔던 것들, 내가 연출이나 음악감독이었을 때 배우들에게 바랐던 것들을 지금 내가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것들을 늘 곱씹어 보는 거죠.


음악감독이나 연출가가 아니라, 동료 배우 박칼린은 어떤 사람인가요?
남경주
  재미있어요. 열정이 굉장히 많은, 소울이 느껴지는 배우에요. 그리고 완벽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자신이 생각하는 게 있으면 그걸 정확하게 하고자 하는 욕심이 많고요. 우리 작품의 등장인물로서는 다이애나에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그건 너무 불안정한 사람이라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남경주
  아니, 사람은 다 그런 면이 있잖아요.
박칼린  제가 양극단을 오가는 폭이 넓어요.(일동 웃음)
남경주  그래서 연기를 할 때 표정이나 눈빛을 보면 ‘어, 진짜 다이애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단 말이죠.
박칼린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게 하나 있어요. 경주 씨는 언제나 주위를 차분하게 만드는 타입이거든요. 무슨 일이 벌어져서 사람들이 우르르 흥분을 하면 진정을 시키는  게 경주 씨인데 댄이 딱 그런 캐릭터잖아요. 또 와이프와 딸을 얼마나 챙긴다고요. 저는 두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아, 가족의 모습이 다 그려져요.(웃음) 항상 이야기하고, 전화하고… 그 두 여자들이 예쁘게, 다치지 않을 수 있게 아끼고 보살피는 경주 씨 모습이 정말 댄 그 자체에요. 
남경주  결혼해서 그래요. 예전에는 천방지축이었지. 책임감이라는 게 사람을 그렇게 바꿔놓더라고요.

 


그런데 정말로 어떤 상황에서든 중심을 잡으려는 사람, 균형을 유지하려는 사람이라는 캐릭터는 배우 남경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남경주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사실 댄은 세상의 모든 보통 아버지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에요. 일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못 보내고, 돈만 벌어다주는 게 아버지의 역할처럼 왜곡되어도 사실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에는, 댄처럼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려는 책임감과 애정이 있거든요.
박칼린  여자들 중에 현모양처가 있잖아요. 현모양처를 남자로 만들어놓으면 그게 딱 댄일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서 댄이라는 역할을 형상화하기 위한 소스를 찾으세요?
남경주
  당연하죠, 당연히 저한테서 가지고 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 허구의 인물을 살아 숨쉬게 만들겠어요.
박칼린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난 애를 키워본 적도 없고 가족 중 누굴 먼저 떠나보낸 적도 없는데 다 겪어본 일 같은 거예요. 작품이 좋아서 그렇게 와 닿는 건지 모르겠어요. 일단 애먹였던 제자들을 생각하면 이 작품은 하기 쉬워요. (일동 웃음)


네 가족의 이야기지만 시상식 무대를 보면 다이애나와 댄, 그리고 게이브의 삼각관계처럼 보이기도 하던데요.
남경주
  그렇다기보다는 나탈리까지 넷이 다 중요해요. 비중을 굳이 따지자면 다이애나의 극인데,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엄마를 중심으로 다른 세 사람 각자의 이야기에 균형이 있어요.
박칼린  굉장히 잘 짜인 작품이에요.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어느 한 사람의 감정만 빠져도 스토리가 연결이 안 돼요. 톱니바퀴처럼 꽉 맞물리게 짜여 있어요.


<넥스트 투 노멀>은 브로드웨이에서 혁신적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혁신적인 작품이 한국에서 통하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불안감이 없지 않을 듯한데요.
남경주
  저는 당연히 잘 통할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이 소재가 중요해요. 정신질환이라는 그 소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가정이든지 다 조금씩 문제가 있고 결함이 있잖아요. 그게 장애나 질병일 수도 있고 다른 문제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온 가족이 그 문제를 놓고 이겨내기 위해 싸우다보면 본의 아니게 그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나탈리 같은 구성원이 생길 수도 있죠. 아빠가 엄마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으니까 나탈리는 애정 결핍과 상실감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이런 모습들은 정말 세상의 모든 가정에 다 있어요. 사실 모든 것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정이야말로 찾아보기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작품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면 모두 공감할 부분들이 있어요.
박칼린  이게 물리적인 질환이라기보다는 머릿속에 있는 병이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어사무사하고 애매모호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 가정의 특징 중에 첫 아들의 특별함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상한 이야기인지 몰라도 만약에 나탈리가 죽고 게이브가 살아있다는 설정이었다면 이 작품이 한국 관객들에게는 덜 와 닿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다이애나가 첫아들을 잃는단 말이죠. 이게 유난히 강렬한 모성애를 보이는 엄마들을 아는 우리 관객들에게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아픔이 극대화 돼서 그 고통이 질병으로까지 넘어가 버린 상황을 이해하게 해주면서 설득력이 생기는 거죠. 이 작품에는 경주 씨가 이야기한 것에 더해서 이렇게 한국적인 특수성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들이 있어요.

 

시상식에서 한글 가사가 굉장히 번역이 잘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상적인 표현들은 아닌데 곧바로 두 사람의 고통이 형상화가 되던데요.
남경주
  아, 그건 번역가 박천휘 씨가 굉장히 잘한 거죠. 배우들은 그 대사와 가사를 직접 소화해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제 경우에 처음 대본을 받아보고 딱히 손댈 게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족스러웠어요. 개사를 한 부분들도 그렇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노력들을 많이 했구나, 작품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 작업을 했구나, 라는 믿음이 느껴지니까 배우들도 그 값어치를 알고 성의를 다하고 있죠. 그 사람들이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작업을 했으니까 그 고민한 결과를 가지고 우리도 최상의 공연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죠. 배우 각자가 개인적으로 뭘 해석하고 뭔가 다른 걸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게 배우들의 몫이기 때문에, 우리가 작품의 주제를 잘못 해석하거나 왜곡을 해서는 안 돼요. 왜 이런 대사가 나왔을까, 이런 장면은 무슨 의미일까 열심히 고민을 하고 그걸 토대로 연습을 했으니까 이제 무대 위에서 우리는 놀고, 관객들은 보고 즐기는 일만 남은 거죠.

 

이번 한국 공연의 연출가가 작품의 초기 제작 과정부터 참여했고 나탈리 역으로 연기도 했던 사람이어서 생기는 재밌는 일이 있나요?
박칼린
  노래를 음정 하나도 안 틀려요! 작품을 정말 꿰고 있는데 나탈리 역을 했던 적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그래서 우리 나탈리한테도 유달리 노트를 많이 줬구나.(웃음) 참, 어제 저녁 연습 때 나탈리가 진짜 좋았어요. 완전히 물이 올랐던데?
남경주  남편 좋았다는 이야기는 안 하는구만! (일동 웃음)
박칼린  경주 씨랑 할 때 참 좋아요. 우리가 연습을 같이 많이 했으니까 편한 게 있어서 그렇겠지만 주면 받아주고 다시 오는 게, 경주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남경주  안심이 되지?(웃음) 이 작품이 참 시기적절하게 나한테 왔다 싶어요. 저녁에 집에 가서 내 가족들과 함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와이프와 진지한 대화도 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것들이 있는 지금, 그것들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정말 재미있고 행복한 거죠. 나탈리나 죽은 게이브를 생각하면서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우리 딸애의 처절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정말 찰나에 뭔가가 와요. 1초, 이런 게 아니라 정말 그 순간에 바로 나한테 오는 게 있어요. 게이브가 죽은 날을 떠올리는 ‘그날을 어찌 잊어’라는 노래에서 애가 너무 아프니까 엄마한테 안겨서 비명을 지르는 순간을 회상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딸이 8개월 때, 젖을 떼려고 하니까 애가 배가 고파서 정말 서럽게 우는데도 그날 와이프가 알레르기 때문에 독한 약을 먹어서 젖을 물릴 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는 애를 차마 못 보고 엄마가 다른 방에 가 있는데 그 걷지도 못하는 갓난애가 기어서 방문 앞에까지 와서 우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데 도와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하다보면 그런 순간의 감정이 다시 나를 확 덮쳐 와요.
박칼린  완전히 이해해요. 사실 난 애를 낳거나 키운 적은 없지만 내가 정말 아꼈던 사람들이 딱 공교롭게도 저 멀리만치에 있는 일이 있어요. 사생활이라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 경주 씨가 이야기한 그 장면이나, 1막에서 자살 기도를 하기 직전에 그 사람들로 인한 감정이 딱 겹쳐와요. 그들이 내 아들은 아니더라도 없어진 내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오는 거죠. 그리워하고, 못 놓고, 괴로워서 정신을 잃은 것 같은 그 감정들이. 공교롭게도 타이밍이 그렇게 맞아떨어졌네요.

 

이 작품을 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 같으시겠어요.
남경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겸허하게, 겸손하게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려야죠. 굉장히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왜냐면 내가 이 작품에서 공감한 것들이 정말 많았으니까.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것들은 사실 서로 비슷할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작품에서 참 좋구나 생각했던 것들에서 관객들도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어요.

 


이 작품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 같은 장면은 뭐였나요.
남경주
  만약 내 아내가 그런 병을 갖고 있으면 과연 내가 댄처럼 대처했을까, 그리고 마지막에 다이애나가 떠나겠다고 할 때 정말 댄처럼 보내줄 수 있을까 그 생각을 많이 했죠. 그렇게 헌신적으로 돌봤는데 ‘나를 사랑해주는 걸 알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준 걸 알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발이 땅에 붙어있지를 않았다, 그래서 이제 떠나겠다’라고 아내가 말한다면, 나는 어땠을까. 댄이라는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일들을 견디고 받아들이는 걸까 싶었어요. 떠나겠다는 아내한테 ‘그럼 내가 그동안 당신을 위해서 했던 일들은 다 아무 소용없다는 거냐?’라고 묻기라도 할 거 같은데, 안 그런단 말이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다가 댄이 참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데서 단서를 찾았어요. 이 사람이 건축을 전공했는데 건축은 미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꽤 상위에 있는 예술이란 말이에요. 그런 예술을 하는 사람이면 인문학적인 소양도 갖췄을 것이고,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볼 줄 아는 성숙한 지성과 내면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이해하게 됐어요. 지금은 그렇게 제 나름대로는 해결을 해서 무대에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박칼린  저는 엔딩이요. 16년 동안 앓고 있던 질병이, 아들을 집에 두고 떠난다고 해서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게이브는 분명히 따라 갔을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엔딩을 잡고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딸에게 더 이상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 내가 없어져줘야 이 사람들이 덜 힘드니까 가족을 떠난 거지 내 문제로부터 완전히 떠날 수 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작품은 예술적이고 극적이어야 하니까 마치 내가 게이브를 집에 두고 가는 것처럼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 질병이 그렇게 쉽게 없어질 것 같았으면 지난 16년간 그런 고통은 없었을 거예요. 버리고 가느냐, 아니냐, 해결이 되는 건가 아닌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다가, 게이브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정리를 했어요. 그리고 내가 미치는 바람에 지난 16년간 자기 문제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댄이 그 게이브를 만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연출과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 작품의 2편이 나오면 댄의 이야기일 거에요. 댄은 다이애나처럼 이런 상황을 만들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 문제를 극복할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요.
남경주  댄은 아주 쉽게 인정을 해요.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을 알아봐 줄까,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아뇨, 했다가 바로 네, 감사합니다, 라고 하거든요. 속이 새카맣게 탔지만 아내를 돌보는 게 먼저였기 때문에 방치해뒀던 상처인데, 어찌됐든 와이프가 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죠.


얼마 안 있으면 무대에 올라가게 되는데요. 이 작품의 대본을 처음 받아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중에 제일 좋았던 때는 언제인가요?
박칼린
  저는 음악감독을 하고 있거나 연출을 하고 있거나 항상 같은 시기인데, 제일 좋은 때는 연습 시작한 지 4주째, 테크 들어가기 전 주에요. 어떤 작품이나 다 그랬어요. 연습실에서 대사 다 외우고 블로킹이 나가고 음악이 붙어서 정말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그 조각들을 모두 맞춰서 이야기가 전달이 되기 시작하는 그때가 제일 감동적이고 좋아요. 그 다음부터는 관객들에게 맡겨야 하지만, 그때까지는 완전히 우리끼리거든요.
남경주  나는 우리 음악 하시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맞춰본 첫날. 악기를 통해서 소리를 낸다는 것도 표현이고, 그 사람들의 생각과 역사가 담겨 있거든요. 배우들이 주어진 허구의 캐릭터와 가상의 상황을 연기하지만 그 연기를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건 배우 개인의 살아온 시간들에서 나온 것들이에요.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런 각양각색의 시간들이 다 만나서 하나의 하모니로 딱 만들어졌을 때. 당연히 첫 연습이니까 실수도 많고 가다가 끊기기도 했지만 어우러짐이 느껴지니까, 짜릿한 거예요. 사실 세상에는 그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게 없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9호 2011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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