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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ENSEMBLE] <벤허> 권기중, 당신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 [No.192]

글 |박보라 사진 |이승재 사진제공 |NCC 2019-09-29 6,531

<벤허> 권기중
당신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

 

지난달 막이 오른 <벤허>의 권기중은 앙상블 사이에서 다른 배우들보다 월등하게 빠른 속도로 의상을 갈아입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게다가 수준급의 마술과 밸리 댄스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벤허>에서도 열다섯 차례가량 등장하여 그 능력을 여과없이 발휘한다. 그의 목표는 관객의 심장을 움직이는 것. 때문에 아무리 짧은 등장 장면이라 해도 인물의 상황과 심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 허투루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각오다. 권기중이 소중하게 만들어낸 캐릭터를 소개한다. 


 

1막 1장 ‘희망은 어디에’ 중 노예

<벤허>의 첫 장면에는 전차 경주장을 만들기 위해 큰 돌과 작은 돌을 옮기는 유대인 노예들이 등장해요. 제 역할은 벤허의 바로 옆에서 작은 돌을 운반하는 유대인 노예죠. 채찍을 맞을 때마다 고통받는 몸짓을 격렬하게 표현해 노예들의 비참함을 강조하려고 해요. 게다가 이 곡 막바지에는 유대인 노예들이 억울한 상황을 무조건 참고 견디지 않고 해방되는 날을 꿈꾸며 희망을 말해요. 저 또한 힘들고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들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집요한 갈망을 최대한 전달하고 싶어요. 



 

1막 2장‘반역’ 중 로마 군사

억울하게 반역죄의 누명을 쓴 벤허는 로마 군사들에게 잡혀가요. 저는 메셀라 옆에서 벤허의 목에 창을 겨누는 로마 군사예요. 또 벤허의 어머니인 미리암을 도망치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요. 저희 작품에서 로마 군사는 전쟁이 만들어낸 잔인한 인간성을 드러내요. <벤허>의 오프닝에서 로마 군사는 어른, 아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죽이거나 괴롭히는 모습이 나오거든요. 로마 군사는 살생과 폭력에 익숙해진 거죠. 이 장면을 통해 전쟁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로마 군사의 잔인함을 더욱 잘 보여드리려 해요. 



 

1막 6장 ‘운명’ 중 퀸터스 장군의 하인

이 장면에서 몰래 들어온 자객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퀸터스 장군의 하인으로 무대에 올라요. 저는 존경하는 퀸터스 장군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데, 믿겨지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고 매우 놀라서 슬픔을 쏟아내죠. 특히 이번 재연에서는 벤허와 퀸터스 장군의 깊은 유대감이 강조되어서 마치 두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거든요. 오랫동안 퀸터스 장군을 따른 하인으로서 충격은 물론이고, 그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벤허의 절망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쉽게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어요.

 

1막 7장 ‘로마의 아들’ 중 귀족 

사실 이 장면에서 귀족으로 출연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노예와 로마 군사에서 귀족으로 신분 상승을 이뤘죠. 하하. 당시 로마에서는 남색이 성행했다고 해요. 이런 설정을 바탕으로, 남성을 탐하는 남자 귀족을 기괴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일부러 과한 행동을 강조하면서 연기하고 있죠. 초연 때는 색색의 가발을 써 독특한 외형을 보여줬다면, 재연에서는 꼬부라진 수염이나 특이한 추임새나 손짓을 강조하고 있어요. 종종 보시는 관객이 ‘남자야? 여자야?’라며 헷갈려 하더라고요. 이 장면에서 ‘알통’을 자랑하는 귀족이 바로 저랍니다! 



 

1막 9장 ‘노예 시장’ 중 유대 군사

전 티토가 유대인을 모아 만든 유대 군사에 합류하는 유대인으로 등장합니다. 로마의 노예였다 풀려난 유대인들이 모여 유대 군대를 만들어요. 로마에서 도망쳐 헤어졌던 동생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동생을 보고 반가움에 뛰어가며 눈물이 왈칵 쏟아져요. 이 장면에서는 모든 배우가 폭발적인 감정을 보여주고 있어, 공연할수록 뭉클하게 다가오죠.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2막 1장 ‘텔고’ 중 남자 무희

이 장면은 안무감독님께서 정말 많이 공을 들이셨어요. 특히 이 장면에서 저를 표현하는 대사 때문에 ‘42살 앙’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해요. 앞서도 설명했지만 당시는 남성이 남성을 탐하는 시대였잖아요. ‘텔고’에서는 남성이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서 매혹적인 춤을 춰요. 대표적으로 밸리 댄스가 등장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리지널 밸리 댄스와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강조된 트라이벌 밸리 댄스로 구성됐어요. 게다가 락킹이나 보깅 같은 현대적인 춤이 다양하게 등장해서 눈을 뗄 수 없죠. 저는 원래 밸리 댄스를 즐겨 췄던 터라, 이 장면을 정말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또 불을 사용해서 묘기를 부리는 기술인 파이어 팬을 직접 해내요. 마술을 좋아해서 불을 다룰 수 있거든요. 제 춤과 기술을 마음껏 보여드릴 수 있는 장면이에요.

 

2막 3장 ‘변장’ 중 유대 귀족으로 변장한 로마 군사

로마 군사들은 유대인인 척 변장을 하고 유언비어를 퍼트리거나 폭동을 일으켜요. 저는 유대 귀족을 연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로마 군사죠.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로마를 지탄하는 의견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품에는 칼을 쥐고 있어요. 같은 편인 척 교묘하게 숨어 있던 이들이 칼을 꺼낼 때, 잔인한 로마 군사의 성향이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벤허도 유대 군사를 로마 군사로 위장시키잖아요. 두 집단의 싸움이 시작되면, 우리 편이 우리를 공격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이 장면의 묘미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인함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점이라 생각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2호 2019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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