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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미드나잇: 앤틀러스> 고상호, 멀리 날 수밖에 없는 이유 [No.197]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2020-02-27 5,511

<미드나잇: 앤틀러스> 고상호
멀리 날 수밖에 없는 이유

 

고상호가 인생캐로 꼽히는 <미드나잇: 앤틀러스>의 비지터로 돌아온다. 2017년 초연부터 작품의 모든 여정을 함께하며 미스터리한 존재 비지터를 만드는 데 일등으로 기여했지만, 여전히 이 작품 앞에 서면 설레고 두렵다는 그. 무대에 서는 일만큼은 평생 질리지 않을 것 같다는 고상호는 이번 공연에서도 쉽게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관객들을 금세 만족시킬 것이다.  


 

인생캐를 완성하기까지 

 

연초부터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 출연하면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죠. 화면 속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요.  아직까지는 제가 제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어색해요. 아무래도 드라마 촬영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아, 저때 왜 저렇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죠. 그래도 다행히 제주도에 사시는 부모님께서 엄청 좋아하세요. 특히 아버지는 아들이 TV에 나온다고 마을 여기저기에 자랑 중이시래요. (웃음) 이제 막 다른 장르의 연기 테크닉에 대해 배워가는 단계라 좋은 작품의 옥에 티가 되지 않는 게 목표예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미드나잇>에 다시 참여하게 됐는데, 이번 시즌은 고민 없이 출연을 결정했나요.  처음에는 당연히 고민했죠. 왜냐면 <미드나잇>은 초연과 재연 모두 참여한 작품이라 같은 캐릭터를 세 번째 맡게 됐을 때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이번에도 변함없이 온전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어요. 솔직히 스케줄상 제작사와 협의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초연을 함께하면서 비지터라는 캐릭터를 저한테 딱 맞는 옷처럼 만들었던 터라 심사숙고 끝에 다시 해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어요. 비지터는 제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만든 캐릭터여서 애정이 커요. 
 

지금까지 참여한 여러 초연작 가운데서 특별히 <미드나잇>에, 그리고 비지터라는 캐릭터에 유독 애착을 느끼는 이유가 있을까요.  비지터는 미스터리한 초월적 존재라서 배우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요. 특히 초연 때 연출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신 덕분에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이것저것 시도할 수 있었어요. 이 캐릭터만큼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연습 초반에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 중 하나가 비지터의 행동이나 자세였는데, 관객들에게 등장부터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움직임에 탭댄스의 안무 요소를 많이 넣었어요. 좀 오래전이지만 한때 열심히 탭댄스를 배운 적이 있거든요. 한동안 오디션 지원서 특기에 탭댄스를 썼답니다. (웃음) 그리고 탭댄스를 활용한 움직임이 스탈린 치하의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미국 문물에 매료돼 있는 ‘우먼’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데도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초연 때는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요. 신생 제작사가 제작하는 새로운 작품인 만큼 선택이 조심스러웠을 수 있는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초연작에 참여하는 걸 좋아해요. <미드나잇>의 경우에는 극 중 캐릭터를 특정한 이름이 아닌 ‘맨’과 ‘우먼’이라고 지칭해 놓은 설정이 흥미로웠어요.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의미이겠구나 싶었죠. 벌써 세 번째 공연이니까 스토리에 대해 아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맨과 우먼 두 사람 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비밀을 감추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야 계속 사랑을 속삭일 수 있고, 부부의 연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대본을 읽으면서 그들이 숨기고 싶었던 치부가 드러나도록 부추기는 비지터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호기심이 생겼어요. 초월적인 존재 비지터가 지닌 자율성에 마음이 끌렸고요. 이걸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웃음)
 

개인 SNS에 공연 소식을 알리면서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이라고 짤막하게 적었어요. 이 뮤지컬 넘버가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네,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은 비지터의 주제곡이나 다름없어요.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최근에 생활고 때문에 도둑질을 해서 신고를 당했는데 경찰관이 오히려 그에게 밥을 사줬다는 뉴스를 보면서,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살기 위해 저지르는 일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저 사람이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그보다 더 나은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등등. 물론 사회적 통념에서 도둑질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지만요. 저희 작품 맨과 우먼의 상황도 비슷해요.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의 가사를 떠올리며 공연을 보다 보면 두 사람의 대사가 더욱 재미있게 들리실 거예요. 관객들이 저희 공연을 보면서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면 그보다 더 보람찬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번 시즌은 초연과 재연 두 가지 버전을 연달아 공연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어요. 처음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요.  <미드나잇> 초연과 재연은 무대 세트나 조명, 의상 같은 비주얼적인 요소가 완전히 달라요.  저는 초연도 좋아하고, 재연도 좋아하는 터라 흥미롭고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했죠. 이번 시도가 성공한다면, 한 작품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거든요. 비지터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재연에서 가장 달라진 캐릭터가 비지터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어요. 액터 뮤지션 버전으로 공연된 재연에서는 비지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네 명의 액터 뮤지션들이 늘 무대 위에서 함께 있어줘요.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액터 뮤지션들과 계속 앙상블을 이뤄야 한다는 점이 신선했죠. 초연 버전은 다른 극적인 장치 없이 혼자 오롯이 캐릭터를 책임지는 데서 오는 재미가 있고요. 체력적으론 초연 때가 더 힘 들었어요. 
 

이번 시즌은 공연 방식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뿐 아니라 비지터 역에 처음으로 여성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더욱 화제를 모았죠.  비지터 역을 맡은 세 배우 가운데 저를 제외한 박은석, 유리아, 두 사람은 <미드나잇>에 처음 참여해요. 특히 (유)리아는 말씀하신 것처럼 첫 여성 비지터라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거예요. 초연과 재연을 한 사람으로서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도우려고 하죠. 저는 비지터를 연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시즌에 맞게 변화를 주면 되지만, 남성 캐릭터를 자신에 맞게 만들어가려면 보통의 연습 기간으론 시간이 부족할 수 있으니까요. 또 비지터가 부르는 뮤지컬 넘버들이 애초에 남성 배우 음역대에 맞게 작곡된 거라 리아의 음역대에 맞게 키를 조정한다고 해도 완벽히 달라지긴 어려울 수 있거든요. 물론 리아는 노래를 워낙에 잘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어서 걱정은 안 해요. 분명히 자기 색깔대로 잘 소화할 거예요. 

 

 

만족할 수 없기에 멈출 수 없는 일 

 

요즘에 워낙 크고 작은 규모의 많은 작품이 올라가다 보니 배우들이 데뷔하는 경로가 전보다 다양해졌잖아요. 상호 씨의 경우, 앙상블로 뮤지컬을 시작했던 경험이 배우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느껴요?  <브로드웨이 42번가>, <영웅>, <그날들> 등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에 앙상블로 참여했던 경험은 제 배우 활동에 밑거름이 되어줬어요. 무대에서 몸 쓰는 법을 그때 다 배웠고, 작품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갖게 됐거든요. 한 발자국 떨어져 무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보여요. 저렇게 연기해야 하는구나,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죠. (웃음) 최근에는 소극장 무대에 주로 서고 있지만, 출연진이 적더라도 서로 앙상블이 잘 맞아야 하잖아요. 대극장 뮤지컬 앙상블 경력을 통해 내가 어떻게 상대를 받쳐줘야 공연이 잘 흘러가는지 배웠기 때문에 그런 경험도 연기할 때 많은 도움이 돼요. 함께하는 스태프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도 큰 자산이고요. 
 

최근에 맡은 작품들 대부분이 무거운 분위기였는데, 어두운 캐릭터를 연달아 맡다 보면 감정적으로 힘들진 않아요?  예전에는 실제 생활에서도 작품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다 보니 테크닉이 좀 생겼다고 해야 하나.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공연에 대한 기억을 빨리 털어내고 제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공연 때만 딱 그 캐릭터에 집중하는 거죠. 대신 연습 기간에는 캐릭터를 만들어가기 위해 매일매일 그 상태로 고민을 지속하다 보니 캐릭터 영향을 많이 받아요. 작년 가을에 <생쥐와 인간>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거칠게 살아온 농장 노동자 조지를 연기했는데, 연습 때 주위에서 왜 이렇게 입이 험해졌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언젠가 인터뷰에서 쇼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관객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서요. 최근 몇 년 동안 어둡고 미스터리한 스릴러물이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대세이다 보니, 무대 위 상황이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물론 스릴러물이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관객들이 공연을 보면서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밝고 유쾌한 작품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얼마 전에 신혼여행으로 뉴욕에 가서 <알라딘>을 봤는데, 지니를 한다면 정말 즐겁게 공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캐릭터상 지니를 못할 걸 알지만요. (웃음)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뭐예요?  저는 그런 만족감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원래 성격은 무언가에 쉽게 싫증을 느끼는 편이에요. 무언가를 새로 시작했는데 남들보다 조금만 잘하면 금세 흥미를 잃는 이상한 습관이 있죠. 예를 들어 친구들이랑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을 때 친구들보다 조금 잘하는 것 같으면 하기가 싫어져요. 이 정도면 됐다 싶은 느낌? 그런데 뮤지컬은 공연하면서 한 번도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어서 오히려 싫증이 안 나는 것 같아요. 아무리 공연을 해도 스스로 만족이 안 되니까 계속 더 매진하게 돼요. 
 

그래도 공연하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한 번쯤은 있지 않았을까요. <미드나잇> 재연 때 그랬어요. 솔직히 고백하면 앞서 말한 이상한 성격 때문에 한 번 했던 작품은 다시 하지 말자는 주의였어요. 이미 아는 작품이라면 처음보다 흥미가 떨어질 텐데, 예전에 했던 것처럼 해낼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미드나잇>을 통해 그 생각을 바꾸게 됐어요. 초연과 재연이 다른 버전이긴 했지만, 같은 작품을 다시 공연했을 때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액터 뮤지션과 호흡을 맞춰가는 희열도 상당했고요. 같은 작품을 반복해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던 게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됐죠. 
 

새해 계획은 세웠나요? 고상호란 배우의 새해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제 새해 계획은 하나예요. 건강하게 살자! 일단, 건강해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좋은 기회로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는데, 앞으로 제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아직 모르겠어요. 배우로서 올해 한 발, 한 발 내딛어 가는 길이 혹시라도 원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장은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저는 배우는 꼭 무대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7호 2020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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