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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ERS TALK] <마리 퀴리>, 생각하고 행동하고 연대하는 여성 [No.198]

글 |안세영 사진제공 |라이브 2020-03-30 3,719

<마리 퀴리>
생각하고 행동하고 연대하는 여성 

 

2018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돼 초연을 올린 <마리 퀴리>가 확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리 퀴리>는 두 차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에 상상력을 더한 뮤지컬이다. 새로운 원소 라듐을 발견하지만 그 유해성을 알게 된 후 고뇌하는 마리와 라듐 공장에서 일하며 동료들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안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본지의 뮤지컬 평론가 양성 프로그램 ‘더뮤지컬 리뷰어’ 출신 네 명이 공연을 관람한 뒤 이야기를 나누었다. 

 

*_자유로운 대화를 위해 참여자 이름은 뮤지컬 캐릭터명으로 기재했으며, 리뷰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자리를 되찾다

스위니_ <마리 퀴리>는 초연과 기본적인 설정만 같고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더라.

롤라_ 초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리보다 남편 피에르가 더 주인공 같다는 거였어. 초연에서 마리가 라듐의 유해성에 대한 발표를 미루고 종양 제거 치료를 위한 임상 시험을 고집한 것과 달리, 피에르는 피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기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라듐의 유해성을 밝혀냈거든. 당연히 윤리적 과학자인 피에르 쪽이 돋보였지. 그런데 재연은 두 사람 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는 것으로 바뀌었어. 마리가 라듐의 밝은 면을, 피에르가 라듐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거지. 피에르의 비중도 확 줄어서 철저히 마리를 도와주는 위치에 머물러.

스위니_ 초연 당시 마리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드러낸 대사가 있어. 그가 어릴 때 강에 빠진 사람을 보고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사람의 밀도에 대해 궁금해했다는 거야. 공감 능력이 부족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보였어. 

레베카_ 반면 재연에서는 마리가 종양 환자를 치료하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자세히 그려져. 그래서 마리가 단순히 과학자의 탐구심 때문에 임상 시험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종양 환자와 라듐 공장 직공 양쪽의 삶이 걸린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점이 뚜렷하게 다가와. 또 폴란드 여자인 자기는 다시 기회를 얻기 힘들 거라고 두려워하는 대사가 생겼잖아. 마리가 라듐의 유해성을 밝히기를 주저하는 이유에 더 설득력이 생겼어. 

스위니_ 초연과 재연은 극의 시작점부터 달라. 초연 때는 마리가 라듐을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됐거든. 그런데 재연은 그가 폴란드 출신 여성 이민자로서 어떤 차별을 겪으면서 이러한 성과를 이뤄냈는지를 먼저 보여줘. 이로써 마리의 성장 서사가 강화되는 동시에 그와 같은 폴란드 여성 안느와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어. 

롤라_ 초연 때도 안느가 마리와 같은 폴란드 이민자라는 설정이 있긴 했지만 둘 사이의 상호 작용은 거의 없었어. 마리가 진실을 마주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건 안느가 아니라 죽은 피에르의 속삭임이었지. 재연은 마리와 안느가 동향 친구로서 친분을 쌓았다는 설정을 더해 두 사람의 우정과 갈등, 연대를 서사의 중심에 놓았어.

마틸다_ 재연에서 달라진 마리와 피에르의 관계도 인상적이야. 두 사람이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아주 짧고 담백하게 보여주잖아. 별다른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데도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 그간 뮤지컬에서 보아온 어떤 커플보다도 건강한 관계로 보였어.

스위니_ 전형적인 남녀의 역할을 뒤집어 놓은 느낌도 들어. 무모한 남성 주인공을 이해하고 보조해 주는 현명한 여성 캐릭터는 흔하지만 그 반대는 신선하더라.

 

마리 퀴리의 빛에 가린 라듐 걸스

롤라_ 라듐 공장 사장인 루벤은 재연에서 캐릭터가 모호해졌어.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돈 욕심이 아니라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고 싶다는 열망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로 그려지잖아. 직공들에게 잘해 주고 병원을 후원하며 독지가 행세를 하다가 뒤늦게 라듐의 유해성을 은폐하는 악역으로 돌변하니까 속내가 뭔지 헷갈려. 단순하게 돈 밝히는 자본가로 표현하거나 처음부터 위선자였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스위니_ 작가는 똑같이 새로운 발견에 대한 갈망을 지녔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마리와 루벤을 대비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 마리와 피에르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그런 얘기를 하잖아. 자연의 비밀을 캐내는 일이 인류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지는 얼마나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마리처럼 예상치 못한 결과 앞에서 끝까지 책임지고 문제를 바로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루벤처럼 진실을 덮고 명예와 이익만 챙기는 사람도 있다는 걸 대비해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  

마틸다_ 사람도 라듐처럼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이런 캐릭터를 만든 걸지도 모르지. 그 의도가 무엇이든 분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는 게 아쉽지만. 

스위니_ 마리와 안느가 유대감을 쌓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점도 아쉬워. 프랑스행 기차에서 잠깐 만나고 헤어진 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갑자기 절친한 친구가 된 채로 등장하잖아. 프랑스에서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나 친해진 건지 의아했어. 

레베카_ 또 직공 하나하나의 사연을 설명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뻔한 개인사를 동어반복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직공들을 대표하는 안느의 서사를 확실하게 내세우면 좋겠어. 

스위니_ 이 작품은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마리와 라듐 공장 여성 직공들(일명 라듐 걸스)의 이야기를 붙여 놓고 ‘만약 마리가 라듐의 유해성을 알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마리 역시 연구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피폭을 당했기 때문에 이러한 상상력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와. 그런데 이야기가 마리 퀴리의 결단에 방점을 찍으면서 상대적으로 라듐 걸스의 공로는 가려졌어. 실제 역사에서 대기업에 맞서 소송을 벌이며 라듐의 유해성을 알린 건 바로 라듐 걸스인데 말이야. 뮤지컬에서도 가장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인물은 안느지만, 결말에서 안느는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사라져. 모두가 마리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동안 이것이 마리와 안느가 함께 거둔 승리라는 점은 잊힌 것 같아 안타까웠어. 게다가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마리에게 충분한 삶을 살았다고 얘기해 주는 그 결말은 왠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아? 딱 <호프> 엔딩이잖아! 

마틸다_ 결말에서 갑자기 위인전이 되었어. 이렇게까지 대놓고 여주인공의 업적을 기리며 눈물을 유도하지 않아도 좋은 여성 서사가 될 수 있는데 말이야.

 

창작진의 연대가 필요한 순간

마틸다_ 가장 아쉬운 건 음악과 연출이야. 신인 작가가 눈에 띄는 역량을 보여준 데 반해 기성 작곡가와 연출가가 대본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어. 음악이 캐릭터와 가사에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배우가 아무리 감정을 폭발시켜도 와닿지 않더라고. 무대와 조명, 동선도 부산스러워서 장면이 바뀔 때마다 집중력이 깨져.

롤라_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무대가 좁다 보니 장면 전환이 어려워서 회전 무대를 쓴 것 같은데 그러면서 동선에 제약이 생겼어. 앞에 넓은 공간을 놔두고 계속 좁은 회전 무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까 답답해 보여.

마틸다_ 특히 마리와 안느가 계단 위에서 대치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의 연출이 아쉬워. 둘 사이의 긴장감을 보여주면서 현 사회의 고공 농성을 연상시키기 위해 그렇게 연출한 듯한데 너무 틀에 박힌 구도가 작위적으로 다가왔어. 심지어 직공 역할 배우들이 계단 세트를 직접 움직이면서 연기하잖아. 죽은 직공들이 왜 거기 있는지도 모르겠고 주의가 분산돼. 

롤라_ 그래도 초반부 소르본 대학 장면에서 음악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전달한 점은 좋았어. 마리가 여성이자 이민자로 어떤 차별을 겪고 어떻게 그것을 돌파해 나가는지, 그리고 피에르와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되는지 한 곡으로 압축해 설명하잖아. 문제는 그때만 빼고 극이 흘러가는 내내 전개가 너무 늘어진다는 거야. 

레베카_ 캐릭터가 흥미롭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분명한데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져. 보기 드문 여성 중심 서사라서 응원하고 싶지만 이런 얘기를 더 재밌게 할 순 없는 걸까? <마리 퀴리>는 초연 때 받은 비판을 수용해 재연에서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왔고, 앞으로 더 발전한 가능성이 충분한 작품이라고 봐. 이번에도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작가의 의도가 잘 구현된 모습으로 또 만나길 바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8호 202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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