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 발라드> 장은아·문진아·소정화
타오르는 순간의 기억
세 남녀의 위태로운 사랑을 그린 <머더 발라드>가 4년 만에 돌아왔다. 장은아, 문진아, 소정화는 지난 시즌에 이어 뉴욕의 술집을 옮겨놓은 듯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핏빛 로맨스를 지켜보는 ‘나레이터’로 출연한다. 이들에게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 사랑을 물었다.
지독한 사랑의 결말
오랜만에 돌아온 <머더 발라드> 첫 공연은 어땠나요?
장은아_ 이미 다섯 번째 출연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어요. 지난 시즌하고 비교해 자잘하게 바뀐 부분이 많긴 하지만, 낯선 부분을 틀리지 말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체력이 떨어지더라고요. 하하. 첫 공연을 마치고 집에 가자마자 쓰러졌어요. 역시 <머더 발라드>구나. 이러면서 바로 곯아떨어졌죠.
소정화_ 마이크를 잡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렸어요. (문진아_ 이게 무슨 소리야. <머더 발라드>를 몇 번 했는데! 너야말로 ‘머더 장인’이잖아.) 아니야, 정말 떨렸어. 첫 곡을 부를 때의 불안함이랄까요? 오프닝 곡인 ‘머더 발라드’ 가사가 수정돼서 연습 막바지까지도 잡고 있었거든요. 관객들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변화를 줬는데, 아무래도 기존 입에 밴 가사들이 있어서 자꾸 틀리더라고요. 그런데 다행히도 공연에서는 틀리지 않았어요. 이제는 새로운 가사가 익숙해요. 그렇게 떨리다가도 역시나 ‘머더 발라드스럽게’ 저절로 몸이 풀어졌어요. 재미있었어요.
이번 시즌에 다시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장은아_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이라서요. <머더 발라드>를 기점으로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졌고, 나레이터뿐만 아니라 세라로도 참여한 적이 있어서 작품에 깊은 정이 있어요. 그래서 제안을 받았을 때 당연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진아와 정화도 한다고 했고요. 또 모두가 알 테지만 <머더 발라드>가 지니고 있는 힘이 있거든요. 그 힘에 이끌렸죠.
문진아_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저는 작품에 참여하면 온 힘을 쏟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이미 참여했던 작품에 다시 출연할 때엔 확실한 의미가 있어야만 해요. 그런데 이 작품은 할수록 재미있고 새롭게 튀어나오는 무언가가 있어요. 게다가 은아 언니와 정화가 다시 한 번 모여 나레이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든든하더라고요. 작품이나 캐릭터를 공부하고 만들어가면서 우울해지거나 마음이 힘들어질 때도 있는데, 이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면 즐거워서 좋아요. 개막하고 나니 같은 역할이라 자주 만나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에요.
소정화_ 지난 시즌이 막을 내린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잖아요. 지금 소정화의 나레이터가 스스로 궁금한 동시에 기대가 됐어요.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기회가 주어졌죠.
사진 촬영을 지켜보니 세 분의 끈끈한 친분이 숨겨지지 않더라고요. 연습도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요.
문진아_ 은아 언니도, 정화도 장녀인데, 저만 외동이거든요. 연습은 물론 평상시에도 저만 방방 뛰어다니는 분위기라 두 사람이 배려를 많이 해줘요. 덕분에 훈훈했죠.
장은아_ 초반엔 나레이터가 제일 여유롭게 연습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기억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거의 새롭게 이 작품에 참여하는 분들이라 여유 있는 저희들을 부러워하셨죠.
문진아_ 그러나 연습 중반부터 무대 디자인이 확정되면서 동선이 수정됐고, 조금씩 달라진 가사를 체크하다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됐어요. (일동 웃음) 연습 분위기가 진짜 좋았던 게 빈말이 아니라 대학로에 <머더 발라드> 연습실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소문이 났대요. 이러니 공연이 좋을 수밖에 없죠.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와 흥미로운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장은아_ 처음 브로드웨이 실황 영상을 보면서 그 스타일리시함에 감탄했어요. 무대에 올라 세련되고 소울풀한 매력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게다가 이야기는 단순하고 평범한데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색다르잖아요. 바 형태의 무대에 객석을 설치해 놓는 파격적인 시도도 했고요. 록 스타일의 음악도 진짜 멋있고 매력적이에요.
소정화_ 은아 언니의 말에 완벽하게 동감해요. 저는 마지막에 부르는 ‘피날레’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배트맨이 없는 조커는 싫거든요. 악당인 조커가 영웅화되는 건 싫어요. 어떤 시선에서는 <머더 발라드>를 막장치정극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가 옳지 않다고 덧붙여주는 메시지도 필요해요. 명확하게요.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단순히 쇼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가 있어요. 작품 전반의 섹시한 매력도 빼놓을 수 없고요.
무대가 곧 객석이라 관객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그동안 기억에 남았던 관객의 반응이 있었나요?
문진아_ 지난 시즌 ‘프랭키석’에 앉으셨던 관객들이 생각나요. 프랭키는 세라와 마이클의 아이인데, 실제 관객이 앉아 있는 객석 하나에 프랭키가 앉아 있다고 상상하고 연기를 했거든요. 나중에는 함께 작품에 몰입해서 프랭키처럼 같이 연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놀랍고 재미있었어요. 보통은 무대석에 앉아 계시는 분들은 배우와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고개도 까딱하지 않으시거든요.
소정화_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면 조금씩 즐기시기 시작하는 분들을 보는 것도 특별한 느낌이에요. 그러다가 커튼콜 때 저희와 함께 열정을 불태워 주시니 더 재미있어요. 다만 이번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자유롭게 커튼콜을 즐기지 못해서 아쉬워요. 마스크 사이로 호응 소리가 삐져나오는 걸 스치듯 들었거든요. 그때 정말 뭉클한 감정이 솟아올랐어요.
욕망에 물들여진 사랑
지난 시즌과 달라진 점이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부분에 변화가 있었나요?
문진아_ 지난 시즌까지는 무대 중간에 당구대를 놓고 그 중심으로 세트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새롭게 달라졌어요. 삼각형 형태의 무대가 됐죠. 탐, 세라. 마이클의 지긋지긋한 삼각관계 그리고 탐과 세라, 마이클과 세라, 탐과 나레이터의 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연출이에요. 또 슬라이딩 문과 2층 무대도 생겨서 나레이터로서는 이야기를 조금 더 넓고 깊게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어요. 무대가 달라지니 동선도 그에 따라 변화했고요.
소정화_ 삼각형 무대가 주는 위압감이 있어요. 무대가 변하면서 움직이는 동선이 달라지니까 새로운 기분으로 임할 수 있어서 배우에겐 장점으로 작용하게 됐죠. 또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수정된 가사로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세 분 모두 여러 시즌에 출연한 만큼 시간이 흘러 각자의 나레이터가 성장했을 거라 생각해요. 이번 시즌의 나레이터는 어떤 모습일까요?
문진아_ 이번에 저희가 연출님과 나눈 대화 중 하나는 나레이터의 시선으로 보는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나레이터는 등장인물들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독특한 캐릭터거든요. 이번 시즌에서는 나레이터가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빠져드는 시점을 지난 시즌보다 조금 늦어진 ‘I'll Be There’로 잡았어요. 이 곡을 기준으로 앞부분에서 나레이터가 탐과 세라, 마이클을 여러 시선으로 지켜봐요. 이후엔 나레이터는 바에서 일하며 탐을 사랑하는 직원으로 정체성을 드러내죠. 그리고 나레이터가 지닌 드라마를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죠.
장은아_ 시즌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시선이 변하더라고요. 이번 시즌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동시에 탐, 세라, 마이클을 보면서 동요가 많이 됐어요. 특히 나레이터가 사랑하는 탐을 다른 인물보다 다르게 접근하게 되더라고요. 지난 시즌에 저는 마이클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거든요. 왜냐면 제겐 오로지 사라와 탐이 중요한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3자 입장에서 인물을 관찰하는 나레이터를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많이 맞췄어요. 지난 시즌들과는 달리 이해심이 높아졌죠.
소정화_ 전 나레이터의 중점을 관찰자에 많이 두는 편이에요.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고요. <머더 발라드>에 흥미를 느끼는 지점 중 하나는 나레이터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등장인물들을 소개해 주지만 어느 순간 그조차도 이야기에 젖어버리고 이어가요. 정말 입체적 캐릭터죠. 그래서 매번 참여할 때마다 많이 고민해야만 해요.
나레이터는 왜 탐을 사랑하게 됐을까.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장은아_ 얼마 전에 SNS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똑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신기하네요. 그런데 나레이터가 탐을 사랑하는 이유는 정말 단순하게 남녀의 관계라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나레이터를 연기하는 배우마다 상상한 서브 텍스트는 존재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보는 관객이 생각하기 나름이지 않을까요?
문진아_ 맞아요. 배우마다 만들어낸 서브 텍스트에 숨겨져 있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저의 나레이터는 탐을 혼자 좋아하는 느낌이 강해요. 혼자 착각하고 오해하고 환상에 빠진 사랑이요. 그래서 마지막에도 분노보다는 외로움이 짙어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정말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올 수 있겠네요.
소정화_ 사랑은 불현듯 오는 거라 생각해요. 나레이터는 어쩔 수 없이 탐을 사랑하게 된 거죠. 나레이터가 마지막에 한 행동도 마지막까지 탐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욕망을 갈구하는 탐처럼 나레이터도 욕망을 잡으려 했던 거죠.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가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나레이터가 탐을 사랑한 이유보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나레이터의 삶이 궁금해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상이 재미있어요. (막이 내린 이후에 나레이터가 어떤 삶을 살았다고 상상해요?) 에이,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순 없죠. (웃음) <머더 발라드>를 보고 돌아가면서 이런 상상을 하는 것도 재미가 될 수 있잖아요. 아, 이건 하나의 팁이기도 한데요. <머더 발라드>가 성스루 뮤지컬이기도 하고 장면 사이에 시간 간극이 많아요. 관객이 상상을 덧붙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죠. 나레이터가 건네는 메시지와 관객의 상상이 더해지면 작품을 또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으실 거예요.
나레이터는 세 남녀의 위태로운 사랑을 바라보잖아요. 어떤 마음이 드나요?
장은아_ 그들의 행동에 따라 다양한 감정이 솟아나요. 게다가 나레이터는 탐을 사랑하잖아요. 세 사람을 보면 화가 나다가도 부러워요. 어느 날은 마이클을 보면서 어쩜 저런 남자가 있냐면서 감탄하다 저도 모르게 비웃기도 하고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들죠.
소정화_ 전 탐과 세라를 보면서 가소로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아요. 지켜보면서도 질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이클한테는 마음이 많이 움직이게 되어서 그의 편을 들어주게 되더라고요. 헌신적이면서 예쁜 사랑을 보여주는 마이클이 가여워요. 마이클처럼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어서 그런가 봐요. 마이클의 안타까운 사랑을 보고 있으면 제가 대신 화를 내주고 싶어요. 저는 마이클의 사랑 편입니다.
문진아_ 어, 정말? 저와는 반대네요. 저는 마이클을 더럽히고 싶어요. 처음엔 순하고, 착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더럽히고 싶어요. 저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들어요.
장은아_ 저는 또 달라요. 마이클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좋아 보이기도 해요. 왜냐면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서요. 저렇게 바르게 살면 이 세상에서 손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 분의 나레이터가 정말 다른 색을 지니고 있어요. 각자의 나레이터마다 특징이 있을까요?
문진아_ 은아 언니는 무대를 장악하는 힘이 있어요. 가만히 서 있어도 모든 걸 아우르는 힘이 있죠. 마치 사자 같아요. 정화는 섹시함이 몸에 흘러요. 그 매력에 탐이 나레이터한테 빠졌을 것 같죠. 그리고 저는 (고)은성이가 어느 날 그러더라고요. 분명 자기 옆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저기에서 연기하고 있다고. 하하. 전 정말 빠르고 많이 움직여요.
소정화_ 그래서 (조)형균 오빠가 저희를 부르는 별명을 만들어줬어요. 은아 언니는 툼레이더, 진아 언니는 할리퀸, 저는 캣우먼! 이 캐릭터들과 저희의 특징이 딱 맞아떨어져요. 정말 잘 짓지 않았나요.
세 분의 별명도 재미있네요. 찰떡 호흡의 세 분이 함께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소정화_ 영화 <오션스8>이나 <미녀 삼총사> 같은 이야기를 함께 해보고 싶어요. 세 사람이 똘똘 뭉쳐서 나쁜 악당들을 응징하러 다니고 싶어요.
문진아_ 무언가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우리에게 의뢰하는 거죠. 그리고 한 사람씩 단계적으로 진실을 파헤쳐서 결정적인 순간에 확 덮치는 거예요. 어? 말하다 보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장은아_ 셋이서 한 무대에 서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소식 들으신 분은 알려주세요.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머더 발라드>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에게 매력 어필을 하자면?
문진아_ 왜 아직도 <머더 발라드>를 못 보셨죠? 마지막 공연날인 10월 25일은 생각보다 금방 와요. 지금 당장 예매하셔서 저희를 만나러 오시길 바랍니다.
장은아_ 맞아요. 지나간 캐스트는 돌아오지 않아요. 제가 언제 또다시 나레이터를 하게 될지 모르겠거든요. 그러니까 저희 셋이 뭉쳤을 때 꼭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머더 발라드>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커튼콜도 있고요.
소정화_ 커튼콜을 기대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코로나19 때문에 조금은 속상해요. 하지만 마스크를 끼고도 마음으로 신나게 호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으니, 신나는 시간을 같이 즐길 수 있을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4호 202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인터뷰 | [SPOTLIGHT] <머더 발라드> 장은아·문진아·소정화 , 타오르는 순간의 기억 [No.204]
글 |박보라 사진 |황혜정 2020-10-08 4,551sponsored advert
인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