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아이비·박지연
시간을 건너 다시 마주한 나
2013년 <고스트> 초연 당시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하는 몰리 역을 맡아 열연한 아이비와 박지연이 7년 만에 같은 역할로 돌아온다. 2010년 데뷔해 올해 나란히 데뷔 10주년을 맞기도 한 두 배우. 지나온 시간만큼 성숙해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른 듯 닮은 여정
두 분 모두 2010년 신시컴퍼니 작품으로 데뷔했어요. 당시를 돌아보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나요?
박지연_ 저는 연기를 전공했지만 뮤지컬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맘마미아!>에서 페퍼 역을 맡았던 이동재 선배님과 실용음악과 수업을 같이 듣게 된 거예요. 선배님이 제가 노래하는 걸 듣더니 소피 역 오디션을 보라고 적극 추천하시더라고요. 그때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모르고, 방학 때 아르바이트 구하는 마음으로 오디션장에 갔어요.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샐린 디온의 ‘Power of Love’를 불렀죠.
아이비_ 푸하하, <맘마미아!> 오디션에서 ‘Power of Love’를?
박지연_ 근데 나쁘지 않았어! 한국어 노래가 아니어도 되니 팝송을 준비해 오라고 했거든요. 노래를 부르다 몇 번 음이탈을 했는데 음악감독님이 계속 다시 기회를 주면서 격려해 주셨어요. 덕분에 첫 오디션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죠. 그때는 오디션이 다 그런 분위기인 줄 알았지 뭐예요.
아이비_ 저 역시 뮤지컬의 ‘뮤’ 자도 모르다가 갑작스레 <키스 미, 케이트>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남경주, 최정원 선배님이 출연하신다는 얘기만 듣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저 같은 문외한도 두 분이 뮤지컬의 신이라는 건 알았거든요. (웃음) 그때 선배님들이 부산에서 <맘마미아!> 공연을 하고 계셔서 <키스 미, 케이트> 배우들도 다 부산에 내려가서 연습했어요.
박지연_ 맞아요! <맘마미아!> 앙상블이 <키스 미, 케이트>에도 많이 참여했거든요.
아이비_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죠. 첫 뮤지컬 도전인 데다 부산에 여행 온 기분도 들고, 매일 연습이 끝나면 <맘마미아!> 공연을 봤거든요. 모든 게 설레고 재밌었어요. 물론 연습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가수로 활동할 때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도 조명과 카메라가 알아서 날 따라왔는데 뮤지컬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약속이잖아요. 게다가 가요 댄스만 추던 제게 뮤지컬 안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어요.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걸 여실히 느꼈죠. 현재 <고스트> 안무감독인 황현정 선배님이 당시 <키스 미, 케이트>에 함께 출연하고 있었는데, 절 위해 나머지 공부를 시켜주셨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그런 선배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두 분 다 서로의 데뷔 무대를 본 건가요?
박지연_ 그럼요. 저도 언니 공연을 봤죠.
아이비_ 지연이가 저보다 먼저 데뷔한 선배님이에요. 그때 얼결에 데뷔한 신인 둘이 지금 이렇게 ‘신시컴퍼니의 딸들’이 된 거지.
박지연_ 사람들이 오해한다니까요. 공교롭게 대표님도 저희도 다 박 씨라서. (일동 웃음)
데뷔작 이후에도 신시컴퍼니 작품에 자주 참여했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지연_ 좋은 작품이 많으니까요. 신시컴퍼니는 집단의 연대를 그리는 작품을 많이 하고, 그만큼 앙상블을 중요하게 여겨요. 여자 배우가 이끌어 나가는 작품도 많고요. 그런 방향성이 저와 잘 맞았어요. 또 저 같은 신인을 발굴하는 데 앞장서 왔잖아요. 이번 시즌 <고스트> 샘 역할에도 신인인 김진욱 배우를 과감하게 캐스팅했죠. 그런 점이 멋지고 존경스러워요.
아이비_ 지연이 말에 동감해요. 신시컴퍼니는 공연계의 유행과 상관없이 흔치 않은 시도를 많이 해요.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만 봐도 스타 배우 대신 아역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잖아요. 예술성에 대한 고집이랄까. 뮤지컬은 쇼 비즈니스지만 단순히 비즈니스로만 접근하지 않는 점이 좋아요. 그 안에 제가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지난 10년의 경력을 돌아봤을 때 <고스트>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요?
아이비_ 쇼적인 성격이 강한 전작 <키스 미, 케이트>, <시카고>에 비해 <고스트>는 훨씬 연극적인 작품이었어요. 처음으로 진지한 역할을 맡은 데다 대사도 많아서 부담감이 컸지만, 그만큼 연기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관객들이 이런 모습의 나도 받아들여 주는구나 하는 가능성을 엿본 작품이에요. 이때의 경험을 발판으로 창작뮤지컬을 포함해 다양한 작품에 도전할 수 있었죠.
박지연_ 저는 <고스트>가 영국에서 초연했을 때부터 이 작품을 알고 있었어요. 음악이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다음 해 신시컴퍼니에서 국내 공연을 올리더라고요. 그때 <레 미제라블> 대구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며 몰리 역 오디션을 봤어요. 최선을 다해 오디션을 보긴 했지만, 사실 그 전까지 <맘마미아!>의 소피,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 같은 어리고 거친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오디션 결과에 큰 기대는 없었어요. 저보다는 선배님들에게 역할이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몰리 역에 최종 합격했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이 앞섰어요. 돌이켜보면 그때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더 주체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어서 이번 공연이 굉장히 기대돼요.
<고스트> 초연은 8개월에 걸친 장기 공연이었잖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이비_ 공연 초반에 많은 관객이 보러 온 기억이 나요. 관객들이 열광해 주셔서 공연이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중반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어요. 전 국민이 슬픔에 잠겼고, 배우들도 무대에 서는 게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단체로 우울증에 걸린 듯했죠.
박지연_ 작품이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내용이라 더 그랬어요. 지금 런스루를 네다섯 번 정도 돌았는데, 감정적으로 너무 힘든 거예요. 새삼 이렇게 힘든 작품을 어떻게 8개월이나 했나 싶더라고요. 앞으로 6개월 동안 공연이 진행될 텐데, 저를 많이 다독여주려고요.
몰리가 물레로 도자기를 빚는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서 도예도 배웠다면서요?
아이비_ 맞아요. 초연 때 일주일에 두 번씩 3개월 정도 레슨을 받았어요.
박지연_ 근데 한 번도 뭘 완성한 적은 없어요. 속성으로 점토를 빚어 올리는 방법만 터득했어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연기하는 동시에 정확히 힘을 줘서 도자기의 형태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초연 때 배워뒀으니 이번에는 몇 번 연습하면 될 줄 알았는데, 첫날 해보니까 와… 비상사태인 거에요. 언니한테 바로 문자 보냈잖아요. ‘큰일났어요. 망했어요.’ 결국 선생님을 모셔 와서 일일 레슨을 받았어요. (웃음)
원작 영화 <사랑과 영혼>을 기억하는 관객도 있을 텐데, 뮤지컬의 몰리만이 지닌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아이비_ 영화에서는 몰리가 마냥 연약한 여성으로 그려진 면이 있어요. 뮤지컬에서는 더 주체적이고 강인해요. 몰리가 연인이 살해당한 뒤 홀로 남은 처량한 인물로 보이면 관객이 따듯한 기운을 받지 못할 것 같아요. 슬프지만 꿋꿋하게 이겨내는 모습이 보여야죠.
박지연_ 남자가 죽어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는 이야기가 아름답긴 하지만,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어요. 연출님도 몰리가 결국에는 샘 없이도 충분히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여성으로 그려져야 관객들이 안심하고 극장을 떠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의견에 동의하고, 몰리를 그런 인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뮤지컬계에서도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각광받는 추세예요. 아이비 씨가 연기한 <레드북>의 안나, 박지연 씨가 연기한 <시라노>의 록산도 그랬고요. 여성 뮤지컬배우로서 변화를 실감하나요?
박지연_ 신작은 창작 단계부터 깨인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만, 저희 뮤지컬배우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작품에 출연할 때가 많잖아요. <시라노>의 록산도 재연 때 연출님과 치열하게 의논해서 캐릭터를 수정한 거예요. 모두가 지금과 같은 록산을 원하는데 대본은 안 그러니까 답답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배우도 함께 노력해야 해요. 하지만 모든 여성 캐릭터가 반드시 강인하게 그려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강인한 사람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양성을 인정하고 열린 태도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비_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지닌 분들의 이야기도 관객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레드북>, <렌트> 등의 작품에 참여하면서 선입견을 깨고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었어요.
10년의 발자취
지난 10년 동안 뮤지컬을 계속하기 위해 넘어야 했던 벽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비_ <아이다>를 공연하면서 갑자기 무대 공포증이 생겼어요. 지금도 무대 공포증 약을 꼭 먹어요. <시카고> 때 약을 안 먹었다가 무대에서 공황 상태가 됐거든요. 다행히 선배님들의 애드리브로 무사히 그 장면을 넘기고 퇴장하자마자 달려가서 약을 씹어 먹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일이 어느 순간 공포의 대상이 된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강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항상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는 걸 깨달았죠. 사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최고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데. 스스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렌트> 무대에 설 때도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잘했어, 충분해’라고 되뇌었어요. 결과적으로 무대가 더 소중해졌어요. 매 공연 목숨을 거는 각오로 임해요. 지금도 두려움과 싸우고 있지만, 무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괜찮아요.
박지연_ 저는 데뷔 초에는 오히려 안 떨었어요. 무대가 재미있고 부족함을 걱정하기보다는 앞만 보고 나아가는 편이었죠. 그런데 <고스트>를 초연했던 2013년 갑자기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어요. 모두가 나를 싫어할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았죠. 극장에 가면 분장실 문을 닫아놓고 있었어요. 누가 복도를 지나가는 것조차 무서웠거든요. 공연 시작 전까지 엉엉 울다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어요. 그 뒤로도 두려움이 오래갔어요. 2017년 소극장에서 <빨래>를 공연할 때는 관객들이 너무 가까이 있는 게 무서웠어요. 공연 중에 작은 실수라도 하면 모두가 나를 질타할 거라는 이상한 생각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그 두려움이 희미해졌을 뿐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사실 초연 당시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고스트> 연습 날짜가 다가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근데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연습실 가는 게 기다려지고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과거에는 저의 슬픔을 연기에 녹여냈는데, 지금은 제 감정이 비워지니까 오히려 몰리한테 집중이 잘되는 것 같아요.
두 분 다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로 데뷔한 이래, 꾸준히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에도 참여했잖아요. 익숙하지 않은 무대에 도전하는 데 따른 망설임은 없었나요?
아이비_ 작품을 선택할 뿐 극장의 크기에 의미를 둔 적은 없어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나 <레드북>은 모두 작품이 좋았기 때문에 참여한 거예요. 물론 저도 중극장 무대에 처음 섰을 때 관객이 너무 가까이 있는 게 낯설고 무서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도 공연의 생동감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관객 표정이 보이니까 더 집중력이 높아지기도 하고요.
박지연_ 저도 <빨래>와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는 작품이 좋았을 뿐 특별히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이라서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실제로 참여해 보니 다른 점이 있긴 했어요. 라이선스 뮤지컬에 참여할 때는 주로 지켜야 할 동선과 큐에 대해 디렉션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빨래>를 하면서 처음으로 철저히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디렉션을 받아본 거예요. 게다가 추민주 연출님은 본인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분이잖아요. 작품의 뼛속까지 알고 계신 분의 디렉션을 받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빨래>에 참여하면서 연기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게 많아요. 제 연기 경력에 전환점이 된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혹시 서로의 지난 출연작 가운데 탐나는 역할이 있어요?
아이비_ 저는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맘마미아!>의 소피! 노래가 정말 좋고, 어릴 때만 맡을 수 있는 역할이잖아요.
박지연_ 언니 목소리랑 잘 어울렸을 거예요. 전 탐나는 게 너무 많은데 어쩌죠?
아이비_ 섹시한 거 골라, 섹시한 거!
박지연_ 언니, 제가 <시카고> 오디션이 떠서 한번 도전해 볼까 하고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봤거든요. 아, 이건 아니다 하고 바로 포기했잖아요.
아이비_ <레드북>의 안나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박지연_ <레드북> 너무 좋죠. 그래도 하나만 고르라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로 할래요. 원작인 일본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마츠코라는 인물이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 색만 가지고 있다면 마츠코는 여러 색깔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아요.
박지연 씨는 2015년 방영한 <오 나의 귀신님>부터 최근 방영 중인 <비밀의 숲2>에 이르기까지 TV 드라마에도 꾸준히 얼굴을 내밀고 있죠.
박지연_ 소속사에서 출연을 권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두려워서 피하고 싶었어요. 낯을 많이 가리고, 음식도 매번 똑같은 것만 시켜먹는 제가 잘 모르는 영역에 뛰어들려니 힘들었죠.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귀영화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일에 부딪치면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배우로서 제가 하는 일에 깊이를 지니려면 끝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매체 활동도 저와 뗄 수 없는 관계라면 좋겠어요.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이비 씨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무대로 넘어왔잖아요. 데뷔 5년 차까지도 뮤지컬배우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인터뷰한 걸 봤는데, 10년 차인 지금은 어때요?
아이비_ 지금은 안 그래요. 요새 어린 친구들은 제가 처음부터 뮤지컬배우로 시작한 줄 안다니까요. (웃음) 뮤지컬 티켓이 고가인 데다 TV 같은 매체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아직 무대에 선 제 모습을 보지 못한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공연을 처음 본 분들이 ‘아이비의 재발견’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10년째 듣고 있답니다. (웃음) 그때마다 열심히 해서 더 많은 분들이 공연을 보러 오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해요.
10주년 기념으로 준비 중인 이벤트가 있나요?
아이비_ 원래 작은 콘서트를 열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할 수가 없었어요. 작년에 팬들하고 소규모 모임을 해봤는데 너무 재밌었거든요. 올해는 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박지연_ 저는 영상으로 10주년 콘서트를 준비했어요. 김중업 건축가가 지었다는 예쁜 주택 한 채를 빌리고 그 안에서 피아노와 기타 반주에 맞춰 총 12곡을 불렀어요.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노래하는 게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보다 더 긴장되더라고요. 실수할 때마다 다시 찍느라 오래 걸렸어요.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울었다니까요! 촬영한 영상은 제 유튜브에 차례로 업로드될 거예요. 지난 10년간 절 응원해 준 관객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영상 제목은 ‘선물’이라고 지었어요. 바로 어제 첫 영상으로 <고스트>의 ‘Here Right Now’를 부르는 영상을 올렸어요.
저도 그 영상 봤어요. ‘Here Right Now’를 소개하면서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곡’이라고 적어 두었던데, 두 분에게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박지연_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항상 집에 있으니까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상념에 빠져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아요. 그러다가 ‘Here Right Now’ 장면을 연습할 때, 연출님에게 ‘이 순간’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는 얘길 들은 거예요. 두 가지 고민이 맞닿아서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가닿았어요. ‘이 순간’은 형체도 없고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결국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있는 셈이죠.
아이비_ 제 삶을 지탱하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주고 싶은 사랑, 받고 싶은 사랑 때문에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연이 얘길 들으니 <렌트>의 ‘오직 오늘뿐’이라는 메시지가 떠오르네요.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올리기 힘들어진 이후 그 문장을 자주 떠올려요. <고스트> 연습을 하면서도 내일 당장 공연이 중단되는 건 아닐까 불안했거든요. 그래도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덧 이렇게 극장 입성을 앞두고 있네요. 예전 같으면 테크 리허설 힘들겠다는 걱정만 했을 텐데 지금은 행복해요.
박지연_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죠.
경력이 쌓이면서 ‘좋은 배우’에 대한 정의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지금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인가요?
박지연_ 개인적으로 배우가 다른 직업에 비해 특별히 인격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배우라면 어때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고 봐요. 다만 지금 <고스트>를 함께하고 있는 최정원 선배님을 보면, 이런 사람이 진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그냥 서 계신 모습만 봐도 멋지고 중심이 단단히 잡혀 있는 느낌이에요. 이번에 <고스트> 연습을 함께하면서 놀랐던 게, 초연 때 오다메의 정점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그걸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좋은 배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배우로서 어떤 길을 가야 한다면 가능한 한 정원 선배님에 가까운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
아이비_ 잘나간다는 배우들과 많이 작업해 봤지만, 결국 따뜻한 사람이 좋은 배우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 것만 고집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동료 배우뿐 아니라 작품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지연이처럼 저도 최정원 선배님을 보고 많이 배워요. 선배님이 저희한테 맛있는 걸 사주고 챙겨줘서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니에요. 선배님은 곁에서 보고만 있어도 존경심이 생겨요. 아마 제가 남경주 선배님 다음으로 정원 선배님과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춰봤을 텐데, 여전히 감탄이 나온다니까요.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5호 202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인터뷰 | [SPOTLIGHT] <고스트> 아이비·박지연, 시간을 건너 다시 마주한 나 [No.205]
글 |안세영 사진 |배임석 2020-10-24 5,373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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