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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신분 상승을 위한 모험은 처벌될까? [No.208]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쇼노트 2022-08-24 1,289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신분 상승을 위한 모험은

처벌될까?

 

1909년 런던을 배경으로 한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은 주인공 몬티가 뒤늦게 출생의 비밀을 알고 신분 상승을 위하여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다. 몬티가 신분상승을 위해 자신보다 선순위에 있는 여덟 명의 백작 후계자를 물리치는(?) 방법은 기상천외하다. 몬티의 위험한 모험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 법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현실에서도 신분 상승이 가능할까


가난한 청년 몬티는 어느 날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몬티는 기쁨에 겨워 이 믿기 힘든 소식을 사랑하는 시벨라에게 전하지만, 시벨라는 심드렁하게 “네가 후계자가 되려면 네 앞의 여덟 명이 죽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라고 말한다. 몬티가 백작이 되려면 현재 백작 애덜버트가 죽고, 몬티보다 선순위에 있는 일곱 명의 후계자도 차례대로 사망하거나 후계자 자격을 상실해야 한다. 


군주제가 아닌 대부분의 현대 국가는 신분제를 폐지했기 때문에 제도적인 측면에서 신분 상승은 불가능하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순위에 맞춰 자격이 상승할 수는 있는데, 민법 제1000조는 상속의 순위를 규정하고 있다. 1순위는 피상속인(고인)의 직계비속, 2순위는 직계존속, 3순위는 형제자매, 4순위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다. 만약 피상속인에게 배우자가 있다면 직계비속·직계존속과 동순위의 공동상속인이 되며, 직계비속·직계존속이 없으면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된다. 이처럼 상속인이 될 자격에 순위가 존재하고, 선순위자가 없거나 결격사유가 생기면 후순위자의 순위가 승진한다는 점이 신분 상승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뮤지컬에서 몬티가 백작이 되기 위해 자신보다 선순위 후계자들을 제거하는 것처럼 후순위 상속인도 잘못된 욕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민법은 이런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상속인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고의로 피상속인이나 선순위자를 해치는 등 일정한 행동을 하면 아예 상속인 자격을 박탈한다. 뮤지컬에서 몬티는 선순위 후계자 일부를 고의로 죽게 만드는데, 만약 현실의 상속 다툼이었다면 상속인 결격사유에 해당하여 상속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추락하는 사람을 잡아 주지 않은 건 죄일까


다이스퀴스 가문의 후계자 가운데 첫 번째로 사망하는 것은 성직자인 에제키엘 목사다. 목사는 교회 옥상에서 몬티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불어온 거센 바람 때문에 추락하고, 몬티는 그의 추락을 그냥 바라만 본다. 이때 목사의 추락사는 몬티의 책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몬티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선 몬티가 에제키엘 목사를 밀어 버릴 의도로 옥상에 올라간 게 아니기 때문에 고의에 의한 살인은 아니다. 고의가 아니라면 과실일까? 만약 몬티가 거센 바람 때문에 균형을 잃고 실수로 목사를 밀어서 추락했다면 과실치사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목사는 스스로 균형을 잃고 추락한다. 결국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목사가 추락할 때 잡아 주지 않은 몬티의 ‘부작위’뿐이다. 


법률상 부작위가 범죄가 되려면 몬티가 결과(목사의 추락사)를 방지해야 하는 지위에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보증인 지위’라고 한다. 보증인 지위는 법령, 계약, 선행행위, 조리 등에 의해 발생한다. 몬티와 목사는 거센 바람이 부는 옥상에 함께 올라갔기 때문에, 험한 산을 함께 등반하는 긴밀한 공동관계와 흡사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만약 긴밀한 공동관계가 인정된다면 목사가 바람에 휘청거릴 때 몬티가 그를 잡아 줄 의무가 있으므로 몬티의 ‘부작위’는 범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의범인 살인죄가 아닌 과실범인 과실치사다. 게다가 현실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단지 옥상에 함께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몬티 자신도 균형을 잡기 힘든 상황에서 목사까지 잡아 줘야 할 의무가 있는지의 여부가 치열한 쟁점이 될 것이다.

 

 

벌과 소품으로 죽음을 유도한 건 죄일까 


몬티가 에제키엘 목사의 사망에 대해 잘 방어했다면 다른 후계자들의 사망은 어떨까. 에제키엘 목사와 달리 일부 후계자의 사망에는 몬티의 행동, 즉 ‘작위’가 작용한다. 이런 경우 살인죄가 성립될까? 법률상 어떤 행위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물으려면 발생한 결과와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판례는 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상당인과관계설’을 취하는데, 사회생활상 일반경험칙상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인정될 때 그 행위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쉽게 말해 A라는 행동이 있으면 B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 상식일 경우 A와 B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뮤지컬에서 몬티는 젊은 대지주 헨리 다이스퀴스가 양봉 애호가라는 사실을 알고 헨리의 모자에 벌이 좋아하는 라벤더 향수를 뿌려 놓는다. 또 배우 레이디 살로메가 자살 연기에 사용할 소품 총을 진짜 총으로 바꿔치기한다. 결국 헨리는 벌에 쏘여 죽고, 레이디 살로메는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죽는다. 두 경우 모두 몬티가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사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행위를 한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두 행동에 대한 법적 평가는 같다고 보기 힘들다. 


먼저 몬티의 행동과 헨리의 사망은 일반경험칙상 인과관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향수를 뿌렸다고 해서 꼭 벌이 몰려드는 것은 아니며, 벌이 몰려든다고 해서 꼭 사망에 이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이 하인이 죽기를 바라고 벼락 치는 들판에서 일하게 한 경우, 하인이 진짜 벼락에 맞아 죽었다 해도 하인의 사망과 주인의 지시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학습 사례와 유사한 논리다. 그러나 레이디 살로메의 경우는 다르다. 살로메가 작품에서 소품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몬티가 이를 알면서 가짜 총을 진짜 총으로 바꿔치기 했다면, 살인의 고의와 인과관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몬티의 위험한 모험에는 죄가 되기 어려운 행동, 죄가 되는지 애매한 행동, 죄가 될 가능성이 높은 행동이 모두 존재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8호 2022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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