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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리어> 김준수, 물처럼 유연한 소리꾼 [No.210]

글 |최영현 사진 |표기식 2022-09-08 2,105

<리어> 김준수
물처럼 유연한 소리꾼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며 우리 소리의 외연을 꾸준히 확장하고 있는 소리꾼 김준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다양한 무대를 오간 그가 국립창극단의 신작 <리어>와 함께 본연의 자리로 돌아온다. 늘 그렇듯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역할과 함께.

 

 

소리꾼의 이유 있는 도전

 

지난해 연말 국악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KBS국악대상 대상을 받았어요. 찾아보니 40년 가까이 된 전통 있는 상이더라고요.
KBS국악대상은 국악인이라면 꼭 한번 받고 싶은 영예로운 상이에요. 이전에 몇 번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상을 받으리라고 기대해 본 적은 없어요. 왜냐하면 항상 선생님들이 받으셨던 상이기도 하고, 상을 받기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후보여도 제가 활동하는 걸 보시고 선정해 주신 거니까 그것만으로 감사했어요. 대상을 받았을 때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만큼 얼떨떨했어요. 너무 좋았고, 영광스러웠어요. 하지만 제가 너무 과분한 상을 받은 것 같아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국립창극단 입단 후에 국악 대중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했는데, 젊은 소리꾼으로서 특별한 사명감이 있었나요?
사명감이라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명처럼 소리에 끌려서 국악을 시작했어요. 저는 국악이 너무 좋은데 친구들은 그게 뭐가 그렇게 좋냐고 자꾸 물어보는 거예요. 친구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저처럼 국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체감했죠. 그때부터 나중에 크면 국악의 매력을 알리는 소리꾼이 되겠다는 꿈을 제 마음에 담아 뒀어요. 그 꿈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고 나서 이루게 된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도전을 통해서 소리꾼으로서의 역량도 키우고 싶었고요. 지난해 <풍류대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 참여한 것도 그런 이유예요. 소리꾼으로서 국악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그동안 다양한 장르와 협업했는데, 뮤지컬에 출연한 건 처음이었어요. 참여해 본 소감이 어떤가요?
언젠가 뮤지컬에 꼭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막상 하려니 걱정이 앞섰어요. 뮤지컬 팬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전혀 감이 안 왔거든요. 아무래도 뮤지컬에 있어서 저는 이방인이잖아요. 소리꾼이 굳이 뮤지컬을 왜 하냐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죠. 처음엔 뮤지컬배우처럼 노래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소리꾼인 저를 캐스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소리꾼으로서 저만의 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다행히 관객 여러분들이 그 점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뮤지컬과 창극은 형식적으로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 작업 해보니 어떠셨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장르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노래나 연기 방식에 차이가 있었죠.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는 방법도 달랐고요. 개인적으로는 창극단에서는 주로 선배님들과 작업했는데, 뮤지컬에서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과 함께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였어요. 말씀하신 대로 창극이나 뮤지컬이나 노래와 드라마가 결합된 극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아주 낯설진 않았어요.

 

혹시 뮤지컬 공연 후기를 읽어 본 적 있어요? 어떤 후기가 제일 기억에 남았나요?
일부러 찾아보진 않지만 가끔 볼 때가 있어요. 반응이 되게 다양해서 놀랐어요. 감사하기도 했고요. 뮤지컬은 처음 하는 거니까 다양한 후기들이 연기나 노래를 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아, 가끔 제 공연을 보고 창극을 예매했다는 후기를 볼 때가 있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웃음) 그분들을 위해서 뮤지컬도, 창극도 더 열심히 해야겠더라고요.

 

 

물로 그리는 인간의 내면

 

<리어>는 국립창극단이 올해 처음 선보이는 신작이에요.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세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극이에요. 내용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배삼식 작가님이 각색하시면서 ‘물’의 철학을 담았어요. 원작이 다양한 관계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에 초점을 두었다면, <리어>는 인간 내면에 집중해요. 인간의 욕심이나 어리석음을 요동치는 물에 빗대어 표현하죠. 물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볼 수 있는 것처럼 작품 속 인물에 자신을 비춰 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창극단에서 <리어>를 한다고 했을 때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연습해 보니까 진짜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던 작품과 달라서 흥미로워요.

 

국립창극단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뤄요.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우리 소리와 어울리는 걸 보면 신기해요.
창극단에 입단하기 전에는 저도 우리 소리에는 우리 고유의 이야기가 잘 어울린다는 고정관념 같은 게 있었어요. <춘향전> <수궁가> <심청가> 같은 작품만 보고 자라서 그 외의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창극단에 입단해서 <메디아> <트로이의 여인들> 같은 서양 작품을 하게 돼서 신기했죠. 그런데 그런 작품을 계속 경험하면서 우리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왜 나는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우리 소리의 가능성에 한계를 두고 있었나 봐요. 제 인생의 대부분을 소리를 하면서 살았지만, 창극단에 입단한 후에 소리에 대한 가능성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됐어요.

 

해외 작품을 원작으로 한 다른 창극에 비교해 <리어>가 갖는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리어>는 우리 이야기와 닮은 지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막내딸 코딜리어와 리어가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심청가>의 한 대목이 떠올랐어요. 무엇보다 리어의 비극이 우리 소리를 만나서 더 극대화되는 면이 있어요. 리어의 비극을 소리로 잘 전달한다면, 관객 여러분이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리어>에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창작진들이 모였죠.
정영두 연출님과는 이번이 첫 작업이에요. 연출님은 안무가 출신이라 그런지 굉장히 섬세하시더라고요. 이번 작품도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셔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저도 기대돼요. 배삼식 작가님은 <트로이의 여인들>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만났어요. 작가님은 글도 좋지만, 우리 소리를 더 맛있게 표현할 수 있게 말맛을 잘 살리시죠. 대본만 읽어도 글에서 소리가 살아나는 느낌이에요. 한승석 선생님이 판소리로 작창을 하셨고, 거기에 정재일 작곡가님이 음악을 덧입히면서 소리를 더 빛나게 해 주셨어요.

 

리어 역에 준수 씨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어요. 원작의 리어는 노인이잖아요.
리어 역할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젊은 단원들이 맡았어요. 다양한 연령대의 단원들이 함께했던 기존 창극과 달리 <리어>에는 소수의 젊은 단원만 출연해요. 캐스팅은 우선 내부 오디션을 하고 연출님과 대본 리딩을 한 다음에 정해졌어요. 솔직히 캐스팅 발표가 났을 때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바로 그다음에 걱정과 고민이 밀려왔어요. 하지만 리어라는 역할이 지닌 무게만큼 많은 걸 배울 수 있겠더라고요. 배우로서, 소리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무게를 견뎌 보려고요.

 

혹시 연출님이나 작가님께 젊은 단원 위주로 캐스팅한 이유를 들으셨나요?
<리어>를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어 하셨어요. 원작에서는 리어가 나이가 들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처럼 묘사되는데, 누구든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으면 리어처럼 행동할 수 있잖아요. 이런 점을 젊은 배우들을 통해 더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연습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앞에서 말한 대로 리어는 정말 만만치 않은 역할이잖아요.
아무래도 리어가 노인이니까 저도 모르게 노인처럼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자세도 약간 구부정하게 되고. 그런데 배삼식 작가님께서 제가 그럴 때마다 노인처럼 연기해야 하는 강박에 갇혀서 표현에 제약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님이 항상 연습실에 오셔서 연기 방향을 잡아 주신 덕분에 생각보다 헤매지 않고 연습 중이에요. 연습을 거듭하면서 리어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조금씩 감이 잡히는 것 같아요. 많은 분이 ‘리어’라는 역할을 기대하시는 만큼, 저도 기대가 커요. 공연이 끝나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리어를 잘 표현해 보고 싶어요.

 

배우들의 소리나 연기 외에 공연에서 특별히 기대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리어>에 물의 이미지가 많이 쓰이다 보니 무대 중앙에 마치 강처럼 보이는 거대한 수조가 들어올 예정이에요.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물의 감정에 따라 수조 안에 물이 천천히 찼다가 빠지면서 색다른 풍경을 보여 줄 것 같아요. 연습실에서는 물이 있다는 가정하에 연습하는데 굉장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배우들이 물 안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기도 하면서 물을 굉장히 많이 활용하거든요. 실제 무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 궁금해요.

 

<리어>를 기다리는 많은 관객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리어> 역시 우리 소리의 틀을 깨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우리 소리를 만나서 어떤 작품으로 재탄생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길 바라요. <리어>를 통해서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0호 2022년 3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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