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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광해, 왕이 된 남자> 배수빈, 잔잔하게 이는 파도 [No.113]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3-03-06 4,992

2012년 최고의 화제작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가 연극으로 제작돼 관객과 만난다. 영광으로 무거울 이름 ‘광해’에 이름을 올린 배우는 배수빈. 주위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해 지난 12년 동안 엑스트라부터 지금까지 차근히 자신의 길을 밟아 온 배우. 지난해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남자, 광해를 연기해야 하는 배수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염은 역할 때문에 기른 거예요?
네, 이런 작은 설정들이 캐릭터를 체화하는 데 도움이 돼요. 그래서 작품을 할 땐 역할에 맞게 생활 패턴을 바꾸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분위기도 변하는 것 같고. 지금은 무작정 기르는 중이라 지저분하게 보일 테지만 이해해 주세요. (웃음)

 

<광해>가 연극으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가 이 역을 하게 될까 궁금했어요. 워낙 크게 흥행한데다 종영한 지 얼마 안 된 영화라서 누구든 부담스러울 것 같았죠.
연극 <광해>가 저희 회사(소속 매니지먼트)에서 제작하는 작품이에요. 전부터 연극으로 만들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제가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한 작품에 들어가면 올인하는 스타일이라, 다음 작품에 대해선 별로 생각 안 하거든요. <26년>을 찍고 나서 어떤 작품이 내게 올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쉬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광해>를 제안해주신 거죠. 마침 공연도 하고 싶었고, 영화와는 다른 재미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해보겠다고 했어요.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를 주로 작업해온 성재준 연출이 참여한 점에서,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보게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영화와 어떤 차별성을 가질지 연출하고 이야기해보니 작품 방향에 대한 정확한 길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도 그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고요. 영화는 리얼리티 때문에,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많지 않았는데, 무대에서는 그런 재미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광대 하선의 퍼포먼스적인 요소도 풍성해질 거고요. 그리고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영화하고는 이야기가 좀 다를 거예요. 결국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서 차이가 있죠.

 

혹시 장르마다 작품 선택의 기준이 다른가요?
아뇨. 전 어떤 장르든 결국엔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뭐든 일단 재미있어야 해요. 그게 감동이 됐든, 웃음이 됐든, 재미있어야 하죠. 이건 보는 이들을 위한 거니까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건, 재미있는 이야기를 신선한 표현 방식으로 전달하는 작품이에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감독이나 연출가하고 작업하는 걸 좋아하죠.

 

그럼 <광해>도 큰 의미에선 재미가 있어서 출연하는 거겠네요? 영화의 어떤 점이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사람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어떤 기질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람의 생을 따라가는 영화들이요. 어떤 인물이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는데, 전 그런 이야기가 좋아요. <광해>의 하선이라는 인물도, 광대였던 그가 뜻밖의 일로 왕의 자리에 올라 혼란스러워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나아갔더니 운명이 바뀌잖아요. 그로 인해 드라마가 생기고, 그 드라마가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그런 지점이 좋았어요.

 

조선의 왕 광해와 광대 하선은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한 사람 내면의 두 가지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잖아요. 현실의 나와 내가 꿈꾸는 나 사이의 간극. 최근에 그런 갈등 겪어본 적 있어요?
항상 겪는 갈등이죠. 배우를 하면서 힘들 때도 많았어요. ‘내가 왜 힘들지?’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자명한 거예요. 인기를 얻고 싶었구나. 돈을 벌고 싶었구나.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서 힘든 거구나. 물론 그런 이유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원동력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로 인해 좌절감에 빠지면 그것만큼 힘든 게 없어요. 그런데 사실 연기자로 힘들어야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연기를 못해서 힘든 거, 그것만 힘들어하면 돼요. 제가 고민해야 할 게 무엇인지 알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저는 천천히 느리게 가고 싶어요. 한발 한발 천천히 가다보면 언젠간 제가 꿈꾸는 배우가 되겠죠.

 

어떤 때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장르마다 장점은 있겠지만, 확실히 배우는 무대 위에 섰을 때 가장 큰 에너지를 받아요.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장르니까요. 그리고 공연은 감독의 편집 없이 계속 이어지는 거잖아요.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그런 갈증을 느낄 때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저를 둘러싸고 있는 포장 껍질이 다 벗겨지는 듯한 기분 백 투 더 네이처랄까,(웃음) 저한테 연극은 그런 느낌이에요. 최소한 2년에 한 번은 무대에 서고 싶어요.

 

모니터링 없이 연기하는 건 재미와 불안을 동시에 주는 일일 것 같아요. 평소 촬영 현장에선 어때요? 모니터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예전엔 불안해서 많이 했어요. 저에 대한 확신도 없고, 상대에 대한 확신도 없을 땐 모니터만 보게 되는 거죠.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사실 상대방을 못 믿었던 것 같아요. 상대를 철저히 신뢰하면, 내가 아무리 이상한 연기를 했어도 ‘이 컷이 필요하니까 오케이 했겠지’ 하고 믿을 수 있거든요. 요즘엔 연출 의도만 확실하다면 믿고 가요. 시간만 허락된다면, 같이 보고 이야기하면서 만들어가는 걸 좋아하지만요.

 

연출과 생각이 달랐던 부분을 배수빈 씨 뜻대로 연기했던 적 있어요?
아우, 많죠. 2007년에 공연한 <다리퐁 모단걸>이 제 첫 연극이었는데, 그때 매 공연을 다르게 할 정도로 많은 실험을 했어요. 첫 연극이다 보니 여러 시도를 했고, 그런데서 오는 즐거움이 컸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해보고 나서 깨달은 게 있죠.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요. 진짜 좋은 공연은 매회 한결같은 공연을 보여주는 거더라고요.
 
뭐든 마음대로 하는 것보단,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어렵죠.
네, 무언가 더 보여줄 수 있지만 관객을 위해 여지를 남겨주는 것, 그게 힘들어요. 그래도 항상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죠. 나 혼자 좋자고 연기하는 거 아니니까요.

 

배우가 되고 나서 생긴 버릇 같은 게 있나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졌죠.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게 됐고요. 어렸을 땐 사람들의 행동만 봤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의 내면을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이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에서 그치지 않고,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생각하게 되는 거죠. 단순히 행동을 차용하는 건 흉내 내기에 불과하지만, 그 행동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돼요. 제가 가진 욕심 중의 하나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나하고의 접점을 찾아 표현하는 거예요. 너무 큰 욕심일 수도 있지만, 이런 욕심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요. 욕심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다보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겠죠. 

 

작품에 대해서는 주로 기다린다는 표현을 많이 쓰더군요.
네, 전 저에게 맞는 작품을 기다려요. 사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어떤 게 내 작품인지 알아요. 그런데 돈이나 인기 같은 외적인 이유로 자신이 가고자 했던 방향과 다르게 타협하게 되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무리한 선택을 하면 결국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요. 작품에 대한 절실함이 없이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불협화음이 나는 건 당연하죠.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다른 건 잘 안 봐요. 감독이 좋은 작품에 대한 절실함이 있고, 저와 추구하는 방향성이 같다면, 믿고 따라가요.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배수빈 씨는 경제적인 면에서 자유로운 편이죠? 배수빈의 연관 검색어로 배수빈의 집안이 뜨던 걸요. (웃음) 그런데 부족함 없이 잘 자란 사람은, 아픔을 모를 거라는 편견 같은 게 있잖아요. 배우는 인생의 온갖 쓴 맛을 경험해 봐야한다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경험이 많은 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경험을 못했다고 해서 배우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학대하면서까지 아픔을 경험해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일부러 상처를 내지 않아도, 일을 하다보면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되고, 상처가 나기 마련이에요. 상처가 나면 스스로 치유하는 법도 터득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각자 자신만의 결이 생기겠죠.

 

배우는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캐릭터로 각인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바람둥이나 복수의 화신 같은 캐릭터도 맡아왔지만, 배수빈은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이미지가 강하죠.
바른 사람이니까요. (웃음) 전 생활 패턴도 단순해요. 음악 듣고, 책 읽고, 영화 보고. 산에 가거나, 사람들하고 쌀국수 먹으면서 수다 떨고, 그게 다예요.

 

쭉 그렇게 심심하게 살았단 말이에요? 배우가 되고 나선 향락 문화를 즐길 기회가 많았을 텐데요. (웃음)
아뇨, 예전엔 많이 놀았죠. 배우는 ‘이래야한다’ 식의 이야기 중 하나가 배우를 하려면 좀 놀아봐야 한다는 거잖아요. 끼를 발산해야 하는 직업이고, 극중 끼가 넘쳐야하는 캐릭터도 많으니까. 그래서 많이 놀아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일을 이미 경험해 봤고,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안다면, 또 다시 해봐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그게 다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뭐랄까, 굉장한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뭐 이러다 또 바뀌겠죠. 작품이나 역할 따라 행동 양식이 달라지거든요. 또 작업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거기에 영향을 받아요. 하지만,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반듯한 이미지를 깨볼만 한 질문인데요. 배우가 된 후 대중에게 처음으로 해본 거짓말은 뭐예요? 누가 그러던데, 신인 배우들이 하는 흔한 거짓말은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는 거라더군요.
저는 스타도 되고 싶고, 배우도 되고 싶어요.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고 싶죠.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으니까요.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는 그게 아니죠. 지금은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그걸 고민해야 해요.

 

그렇죠. 연기를 잘한다면, 인기와 돈은 자연히 따라오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제가 똑똑한 것 같아요.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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