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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행복한 왕자> 홍승안 [No.224]

글 |최영현 사진 |맹민화 2023-06-07 3,257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행복한 왕자> 홍승안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행복한 왕자>는 배우 한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모노 뮤지컬이다. 창작뮤지컬로는 보기 드문 형식을 취하는 이 작품에 배우 홍승안이 도전한다. 고통이 없으면 기쁨도 없다고 말하는 그는 고생 끝에 완성될 작품과 한층 성숙해질 자신을 기대한다. 기꺼이 창작의 고통을 즐기며 행복한 무대를 준비하는 홍승안을 만났다. 

 


도전의 이유

 

2014년에 극단 활동을 시작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죠. 본격적으로 상업 무대에 서기 시작한 2018년부터는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바쁘게 오가며 활동 중이에요. 배우 홍승안을 계속 무대에 서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저도 무대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제 주변에는 저보다 더 열심인 친구들도 많거든요. 무대에 설 때마다 저에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해요. 처음부터 이런 마음은 아니었어요. 저도 사람이니까 무대에 서는 게 지칠 때도 있었고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죠. 그러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배우는 정말 많지만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는 적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후로는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무대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됐어요. 

 

연극, 뮤지컬뿐만 아니라 틈틈이 오디오 드라마처럼 재미있는 활동도 하더라고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새로운 활동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의 욕심이랄까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많아지면서, 저의 태도나 생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더라고요. 그 재미에 자꾸만 일을 벌이게 되나 봐요. 

 

여러 활동 중 가장 눈에 띄는 게 원승휘 프로젝트예요. 이지원 연출가, 정휘 배우와 함께 공연을 제작한다는 목표 아래 모인 팀인데, 지난해 두 번째 연극 <농장동물>을 선보였죠. 직접 공연 제작에 참여해 본 소감이 어때요?
평소 공연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했어요. 저도 공연에 참여하고 있지만 배우의 일이 아닌 다른 부분은 잘 모르거든요. <농장동물>은 극단 공연처럼 올린 작품이라 상업 제작사처럼 모든 제작 과정을 다 밟진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과 많은 사람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공연을 위해 엄청 애를 쓰고 있다는 것도요. 전반적인 공연 제작 과정을 이해하고 보니 연기 외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 새롭게 참여하는 작품은 오스카 와일드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행복한 왕자>예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뭐예요?
<행복한 왕자>를 뮤지컬로 공연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왜?”라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원작을 각색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건지, 아니면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내 보려는 건지 궁금했어요. 제작사 측에 이유를 물어보니까 원작을 그대로 무대에 그려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대답을 듣자마자 호기심이 생겨서 대본을 읽어보겠다고 했어요. 대본에 원작의 텍스트를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하겠다는 마음이 꽉 채워져 있더라고요. 진심이 느껴지니까 저 역시 이 작품을 관객에게 잘 전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행복하게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배우마다 다르지만 저는 공연하는 동안에는 제가 맡은 인물처럼 생각하는 편이에요. 종종 무대 밖에서도 제가 맡은 인물의 캐릭터가 묻어날 때가 있어요. 차분하고 진지한 역할을 계속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자꾸만 차분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밝고 행복한 역할을 해보고 싶었죠.

 

작품 선택 기준 중의 하나가 배우로서 즐길만한 포인트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행복한 왕자>는 대본 외에 어떤 점에서 흥미를 느꼈나요?
아무래도 1인극이라는 게 가장 흥미로웠어요. 배우로서 한 작품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다는 건 축복이자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동시에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죠.) <행복한 왕자>를 준비하는 과정은 분명 어려워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저는 이 말에 공감해요. 제가 고생해서 준비하는 만큼 무대에서는 행복할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1인극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번에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연기해 보려고요.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 작품을 완성해 나갈 저 자신에 대한 기대가 커요. <행복한 왕자>는 제게 여러모로 색다른 경험이 될 거 같아요. 

 

기존의 연기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지 이야기해 준다면요?
어떤 작품이든 구조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배우가 할 일은 그 구조 안에서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올드 위키드 송>을 하면서 그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여전히 배우가 극의 구조 안에서 연기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 말이라면 극의 구조를 조금 허물더라도 해야 할 필요가 있더라고요. 같이 호흡을 맞췄던 선배님들 연기를 보고 배우면서 제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었어요. 마침 <행복한 왕자>가 1인극이라 좀 더 과감하고 다양한 연기를 시도해 보려고요. 

 


행복을 찾아서

 

기존 초연 창작뮤지컬과 <행복한 왕자>를 준비하는 과정에 차이가 있나요? 1인극이라는 형식 때문에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의 큰 틀을 잡는 과정에서는 다른 창작 초연 작업과 큰 차이는 없었어요. 대신 기존에는 장면별로 틀을 잡아갔는데 <행복한 왕자>는 1인극이라 그런 방식은 별로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배우마다 돌아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대본을 훑으면서 어떤 흐름이 만들어지는지 살폈던 게 조금 달랐어요. 이제부터는 큰 틀 안에서 배우마다 어떻게 작품을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단계인데, 이 부분부터는 기존 창작 초연 작업과는 차이가 생길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잡은 틀 안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되 배우의 성향과 개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풀어보려고 하거든요. 

 

1인극이긴 하지만, 극 중에서는 다양한 역할을 맡아서 연기해요. 캐릭터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미리 생각해 둔 게 있어요? 
제가 멀티 연기를 정말 잘합니다. (웃음) 학교 다닐 때나 극단에 있을 때는 곧잘 멀티 역을 맡곤 했어요. 멀티 역할은 각 캐릭터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행복한 왕자>는 그렇게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멀티 역할을 수행했던 것처럼 명확하게 인물이 구분되도록 연기하겠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이 사람이 와일드인지, 행복한 왕자인지, 아니면 제비인지 모호하게도 해보려고 해요. 

 

보통 뮤지컬에서는 인물에 따라서 음악이 조금 달라지곤 하는데요, <행복한 왕자>는 역할마다 어떤 음악적 차이가 있나요?
우선 역할별로 노래 장르가 달라요. 해설자인 와일드 역할은 약간 재즈풍의 노래를 불러요. 제비는 굉장히 발랄한 친구라서 춤추기 좋은 4/4박자의 음악에 맞춰 율동과 댄스의 중간쯤인 율댄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웃음) 행복한 왕자는 드라마틱한 노래가 많아요. 작곡가님이 캐릭터와 노래에 따라 어떻게 부르고 표현해야 할지를 굉장히 섬세하게 지시해 주고 계셔서 창법도 다양하게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한 곡 한 곡 따로 들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해서 들을 때가 더 좋아요. 극 중에 뮤지컬넘버가 열 곡 정도 나오는데, 그 모든 곡이 마치 한 곡처럼 이어져서 부르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연습을 해보니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요?
지금은 대사 외우는 게 제일 어려워요. 아직도 다 못 외웠습니다. (웃음) 평소에도 대사 외우는 게 느린 편인 데다 1인극이라 분량이 많아서 좀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대본 외우는 거 빼고는, 이 작품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것도 80분을 한 호흡으로, 저 혼자서! 

 

어쩌면 실제 무대에서 공연할 때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이 작품을 하면서 기대되는 것 중의 하나예요. 제가 무대에서 가장 행복할 때가 어떤 ‘공기’가 잡힐 때예요. 공기를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가 정말 어렵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무대에 딱 집중되는 순간과 비슷해요. 저는 그 순간이 계속 지속됐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는 너무 어렵죠. 근데 이번에는 1인극이니까 집중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 공연을 하면 어디서 집중력이 생기는지, 또 어디서 흩어지는지 피부로 느끼겠죠. 그러면 그 집중력을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에너지를 배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될 테고요. 그렇게 무대에서 관객과 계속 소통하면서 집중력을 어디까지 높일 수 있을지 궁금해요. 

 

<행복한 왕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행복한 왕자>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가치를 일깨워 주면서 동시에 내가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질문해요. 그런데 여기에 ‘나와 관련 없는 사람에게도’라는 조건이 붙어요. 주변 사람을 사랑하는 건 쉽지만 나와 상관없는 타인까지 사랑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처럼 각박한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 아닐까 싶어요. 이 작품을 통해 저도 용기를 내서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대답을 듣고 보니 이 작품이 배우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많이 미칠 것 같네요. 
저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 냉소적이에요. 그런데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전혀 달라요. 제비는 헌신하고, 행복한 왕자는 희생하잖아요. 둘은 사랑의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한다는 게 부끄러워요. 그래서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매일 반성해요. 요즘 들어 스스로가 인간적으로 미성숙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내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런 질문도 늘었고요. 때마침 <행복한 왕자>를 만나서 저를 좀 돌아보고 인간적으로 성숙할 기회를 맞이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배우로서 언제 가장 행복해요?
커튼콜 때 관객 여러분 눈빛에서 사랑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해요. 무대에 서기 전에는 배우가 관객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몰랐어요. 커튼콜 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나는 오늘 공연하는 동안에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이었구나. 내 몫을 해냈구나. 관객들이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셨구나. 감사하다. 그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요.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배우 홍승안은 언제까지 행복할 것 같아요?
연기를 하는 동안에는 행복할 것 같아요. 선생님들께서 연기를 잘하지 못 해서 불행한 게 아니고 하고 싶은 연기를 못 해서 불행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배우를 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로 크고 작은 불행이 생길 수 있겠지만요. (웃음) 하지만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으니까, 평생 행복하지 않을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4호 2023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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