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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무대 위 화룡점정, <그날들> 서정주 무술감독 [No.227]

글 |안세영 사진 |조현설 2023-08-23 2,108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 <그날들>. 이 작품에서 경호원을 연기하는 20여 명의 앙상블은 감탄을 자아내는 화려한 액션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명 ‘갓상블’로 칭송받는 이들 뒤에는 이 모든 액션을 구상하고 지도한 무술감독 서정주가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액션 배우로 활약하는 동시에 공연 무술감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공연과 영화의 경계를 넘어

 

스턴트맨으로 먼저 경력을 쌓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영화계에 발을 들이셨나요?

20대 시절 한국 전통 검술에 뿌리를 둔 검예도를 배우면서 한빛예무단이라는 공연 단체에서 활동했어요. 한번은 스턴트맨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한 달간 공연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이 이후 <아저씨>의 무술감독으로 유명해진 박정률이라는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저에게 영화 쪽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권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액션 배우가 꿈이었던 터라 솔깃했죠. 결국 그 친구를 따라 신재명 무술감독님이 이끄는 무술 팀 ‘베스트 스턴트 팀’에 들어갔고, 2005년 개봉한 영화 <잠복근무>에서 스턴트맨 활동을 시작했어요. 지금도 저는 베스트 스턴트 팀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어요. 최근 저희 팀의 박영식 무술감독이 작업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사냥개들>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더 바빠졌죠.

 

출연작 가운데 본인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요즘은 키 큰 배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제 키가 대역하기 딱 좋은 사이즈여서 주인공 대역을 많이 맡았어요. 2009년 개봉한 영화 <쌍화점>에서 주진모 배우 대역을 맡아 검술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영화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죠. 2014년 개봉한 뤽 베송 감독의 헐리우드 영화 <루시>는 제가 대역이 아닌 배역을 맡아 얼굴을 드러내고 출연한 작품이라서 각별해요. 최민식 배우가 연기한 악역 미스터 장의 수하로 등장했는데, 총격전 장면에서 바주카포를 쏘는 게 바로 저예요. 지금도 저는 견자단 같은 액션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동하다가 어떻게 공연 무술감독으로 영역을 넓히신 건가요?

이전에도 극단 현대극장의 뮤지컬 <해상왕 장보고> 등에 앙상블로 출연하며 무술 합을 짠 경험이 있지만, 처음으로 무술감독이라는 직함을 달고 참여한 공연은 2011년 초연한 <조로>예요. 처음에는 박영식 무술감독에게 와이어 액션과 검술을 비롯한 무술 장면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때 박영식 감독이 “와이어 설치는 내가 맡겠지만, 검술은 전문가가 따로 있다”라며 저를 소개한 거죠. 그렇게 해서 무술감독으로 합류한 저는 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와 펜싱 경기 영상을 참고해서 영화처럼 속도감 있으면서도 화려한 액션을 무대 위에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결과적으로 이 작품의 액션이 관계자와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얻으면서 저에게 공연 무술감독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렸죠.

 

카메라 워킹, 편집, 대역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무대 공연의 특성상 액션 장면을 구상할 때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점이 있을까요?

공연은 배우가 직접 액션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매회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 때문에 액션의 수위를 잘 조절해야 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무술을 도입하겠다는 큰 그림만 그려두고, 배우들을 만나 소화력을 확인한 다음에 세세한 합을 짜요. 또 공연은 같은 배역에 여러 배우가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중 가장 소화력이 낮은 배우에게 맞춰 액션을 짜야 해요. 단순히 고난도 테크닉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액션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극적인 포인트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이죠. <그날들>의 검도 장면만 봐도 동작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아요. 대신 빠르고 힘 있게 밀어붙여서 드라마와 음악에 잘 어우러지도록 만들었어요.

 

<그날들>에는 2014년 재연 당시 신선호 안무가의 제안을 받고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액션과 안무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식으로 협업하셨는지 궁금해요.

신선호 감독님이 안무 사이사이에 15~20초의 시간을 주고 액션을 채워달라고 말씀하셔서 처음에는 당황했어요. 긴 호흡의 액션만 구상해 봤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액션을 보여줘야 하는 작업은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한된 길이의 음악 안에서 안무가 담당해야 할 것과 액션이 담당해야 할 것들을 나누고 조율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저는 신선호 감독님의 안무를 참고해서 액션의 템포와 강약을 조절했어요. 반대로 제가 먼저 안무에 이런 동작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시범을 보여드리기도 했어요. 그럼 신선호 감독님이 그걸 영상으로 찍어 가서 다음 날 기가 막힌 안무로 만들어 오셨죠. ‘이등병의 편지’에서 두 명씩 조를 짜서 엄폐하면서 총을 쏘는 안무, ‘꽃+내 사람이여’에서 삼단봉을 휘두르는 안무 등이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끝없는 고민과 연구

 

<그날들>의 배우들은 경호원이라는 특색 있는 직업을 연기하잖아요. 공연 속 액션에 이러한 직업적 특성이 반영된 부분이 있을까요?

일단 태권도, 유도, 검도, 특공 무술 등 실제로 경호원이 배우고 사용할 법한 무술을 활용했어요. 그리고 단순히 걷고 뛸 때에도 경호원답게 움직이는 법을 가르쳤죠. 저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군대도 특공대를 나왔기 때문에 실제로 주변에 경호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영화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면서 제가 직접 경호원을 연기해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배우들을 지도할 때 경호원이 어떤 직업의식을 지닌 사람인지 알려주려고 노력해요. 경호원은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지킨다는 사명감이 큰 직업이잖아요. 단순히 멋있게 보이려는 것과 경호원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는지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시즌을 거듭하면서 액션이 달라진 장면도 있나요?

경호원 훈련 과정을 보여주는 ‘변해가네’ 장면은 앙상블이 10m 높이에서 외줄에 의지해 하강하는 ‘레펠’로 시작해요. 재연 때는 벽을 마주보고 점프해서 내려오는 후면 레펠을 시도했는데, 생각만큼 다이내믹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시즌부터 바닥을 마주보고 떨어지는 전면 레펠로 바꾸었어요. 특별히 대담하고 몸을 잘 쓰는 배우들을 골라 이 역할을 맡기죠. 재연 당시 낙법을 선보였던 장면은 매트를 깔고 치우는 게 번거로워서 격파로 대체했어요. 또 이전 시즌의 호신술 훈련 장면은 속도감이 떨어지길래 이번에는 복싱, 태권도, 유도, 아크로바틱 동작을 섞어서 스피디한 액션을 만들었어요. 이 밖에도 시즌마다 배우의 소화력을 고려해 조금씩 바뀐 장면이 있어요. 이번 시즌에는 아크로바틱 특기자가 없어서 어떤 액션으로 화룡점정을 찍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풍선 차기를 새롭게 시도했어요. 공중으로 뛰어올라 발차기로 여러 개의 풍선을 한 번에 터트리는 액션인데, 다행히 점프력이 좋은 배우가 있어서 좋은 그림이 나왔죠. 풍선 안에는 미리 가루를 넣어두어서 풍선이 터지는 순간 먼지가 흩날리는 효과를 노렸어요.

 

노래와 춤이 아닌 무술을 잘하는 뮤지컬배우를 찾기는 쉽지 않을 텐데, 감독님이 직접 오디션에 관여하여 배우들을 선발하시나요?

<그날들>은 신선호 감독님이 워낙 어떤 배우가 필요한지 잘 알고 계셔서 저는 오디션에 관여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크로바틱이 중요한 작품의 경우 제가 직접 배우들을 선발하기도 해요. 육군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귀환>의 경우 태권도 시범단을 대상으로 따로 오디션을 봤어요. 처음에 50명 정도 오디션을 봤는데 이상하게 다들 실력이 아쉬운 거예요. 제가 정말 이들이 다냐고 물어보니까 군에서 마지못해 10명을 더 불러주었는데 그들이 압도적으로 잘하더라고요. 에이스를 내주기 싫어서 마지막까지 숨겨두었던 건데, 결국 제가 다 데려와서 미움을 샀죠. (웃음)


<그날들> 외에 그동안 참여한 공연 가운데 특히 애착이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등학생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 <유도소년>이요. 실제 유도 경기처럼 실감 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대련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서, 학창 시절 실제 유도 선수였던 박경찬 작가와 머리를 맞대고 많은 연구를 했어요. 고맙게도 배우들 역시 열정적으로 임해주었죠. 2개월간 체육관에 다니면서 유도와 복싱을 배우고 몸을 만들었어요. 2015년 초연 당시만 해도 대학로에 이렇게 본격적인 스포츠 소재의 공연이 드물어서 큰 화제가 되었고 방송 관계자도 많이 보러 왔어요. 

 

무술감독으로서 ‘이런 공연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상상해 본 것이 있으신가요?

제 전문 분야가 한국 전통 검술이다 보니 정통 사극을 해보고 싶어요. 올해 대학로에서 초연한 <결투>도 제가 참여한 작품인데, 정통 사극은 아니지만 무협을 표방한 작품이라 칼싸움을 마음껏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어요. 펜싱을 소재로 한 <비더슈탄트>와는 또 다른 멋이 있죠. 또 제가 2012년 방영한 드라마 <각시탈>에서 각시탈 대역을 맡았는데,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가면 뒤에 정체를 감추고 일제에 맞서 싸우는 영웅 이야기라서 통쾌하면서도 감동적이거든요. 주인공이 가면을 쓰니까 액션 장면에서 대역을 쓸 수도 있고요. (웃음) 군중 모두가 각시탈을 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전진하는 마지막 장면은 <레미제라블>을 연상시키기도 해요. 이런 장면이 뮤지컬 무대로 옮겨지면 어떨까 상상해 봐요.

 

공연계에서 무술감독은 여전히 낯선 분야인데, 그동안 일하면서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있으세요?

10년 넘게 공연계에서 일했지만 지금도 새로운 제작사를 만날 때마다 제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왜 이 작품에 필요한지를 계속 증명해야 해요. 대부분의 공연 제작자는 여전히 공연에는 무술감독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비전문가가 액션을 구상하면 배우가 다칠 위험이 크고, 결과물의 완성도도 낮을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 비하면 무술감독을 찾는 공연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수요가 부족하고, 영화나 드라마에 비하면 경제적 보상도 크지 않아요. 저는 공연계에서 일하는 게 행복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후배에게 저와 같은 길을 권하기는 힘들어요. 좋은 공연의 탄생을 위해 무술감독의 필요를 인지하고 불러주는 곳이 늘어나길 바라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7호 2023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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