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프랑스부터 영국, 뉴욕을 거쳐 한국에 이른 <레미제라블>의 신화

글 |박병성(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2024-01-04 3,142

 


 

1980년대 메가뮤지컬의 시대를 연 작품은 <캣츠>였지만 그것을 시대적 트렌드로 만든 작품은 <레미제라블>이었다. 1980년대 메가뮤지컬 빅4는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바로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이다.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상업적 감각을 겸비한 그는 <캣츠> 이후 더 큰 성공 기록을 써내려가며 뮤지컬계 마이더스 손으로 불렸다. 떠오르는 유망 프로듀서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 작품이 <레미제라블>이었다. 1983년 카메론 매킨토시는 프랑스에서 제작한 콘셉트 앨범 하나를 받게 된다. 바로 1980년 프랑스 창작자들이 뮤지컬을 올리기 전에 제작한 <레미제라블> 콘셉트 앨범이었다. 카메론 매킨토시는 프랑스어라 정확한 가사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4곡을 채 듣기도 전에 대단한 작품임을 간파했다.

 


 

프랑스어 버전의 탄생

2000년대 이전까지 프랑스는 뮤지컬을 즐기는 나라가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열렬한 관객 반응을 얻어낸 브로드웨이 히트작들이 프랑스에 가서는 번번이 흥행 실패의 쓴맛을 맛보곤 했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음악극 전통을 지닌 프랑스는 뮤지컬을 저속하고 값싼 상업물 정도로만 여겼던 것 같다. 1979년 프랑스 최초 뮤지컬 <스타마니아>가 성공한 이후에도 다양한 뮤지컬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알랭 부블릴은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올리버>를 보고 소설 『레 미제라블』의 어린 혁명 영웅 가브로슈를 떠올렸다. 알랭 부블릴은 『레 미제라블』을 뮤지컬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제일 먼저 싱어송라이터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에게 이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이끌어낸다. 쇤베르그는 알랭 부블릴과 프랑스 혁명을 다룬 록 오페라를 만든 경험이 있었으나 1,200페이지가 넘는 원작 소설을 무대 공연으로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두 창작진은 거대한 흐름을 유지한 채 등장인물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뮤지컬 공연을 올리기 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흥행 모델을 참고해 콘셉트 앨범을 발매했다.

 

프랑스 버전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대형 아레나 공연장인 팔레 데 스포츠(Palais des Sports)에서 100회 공연하여 50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등 큰 성과를 냈다. 흥행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뮤지컬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프랑스에서 재연 공연 가능성은 낮았다. 초연 공연으로 사장될 수 있었지만 3년 후 카메론 매킨토시가 콘셉트 앨범을 듣게 되면서 <레미제라블>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었다.

 


 

 

역사의 시작, 웨스트엔드 초연

미셸 쇤베르그와 알랭 부블릴은 뮤지컬의 이해가 충분하지 못했다. 카메론 매킨토시는 프랑스판 <레미제라블>을 영어 버전으로 바꾸면서 이들을 참여시켜 뮤지컬 스타일에 맞게 대대적인 수정을 가한다. 미셸 쇤베르그는 영어 버전을 위해 새롭고 음악을 구성하고 써야 했다. 가사는 대대적으로 수정되었다. 허버츠 크리츠머에게 영어 버전 가사를 맡겨 프랑스 혁명사를 인물 중심의 서사로 바꾸었다. 알랭 부블릴의 가사 중 3분의 1 정도가 새로운 가사로 대체되었다. 낭송 스타일의 시적인 대사들이 일상적인 대화체 언어로 바뀌었고, 프롤로그 부분에 장발장을 소개하는 내용이 삽입되었다. 자베르가 자신의 신념을 노래하는 뮤지컬 넘버 ‘Star’는 영어 버전에서 새롭게 작곡된 곡이다. 불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프랑스어 버전을 틀로 새롭게 창작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끊임없는 수정 작업은 긴 시간을 요구했다. 배우들이 모두 모이는 첫 리허설에 1막 대본밖에 줄 수 없었다. 리허설 기간 동안에도 가사 작업은 계속 되었고 ‘Bring Him Home’의 가사는 개막 몇 주 전에 완성되었다.

 

<레미제라블>은 유독 리허설 기간을 길게 잡고 완성도를 높여갔다. 이렇게 긴 리허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RSC(Royal Shakespeare Company)가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카메론 매킨토시는 19세기 방대한 고전 소설을 무대화하기 위해서는 RSC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캣츠>에서 RSC의 예술감독인 트레버 넌과 무대디자이너 존 나피어와 작업한 경험했던 매킨토시는 이들을 신뢰했다. RSC가 공동제작으로 참여하면서 초연은 바비칸센터에서 이루어졌다. 프리뷰 초연은 무려 3시간 50분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이었다. 프리뷰를 이어가며 주변 인물들의 대사를 줄이고 중심인물들의 서사에 집중시켰다. 마침내 1985년 10월 8일 바비칸센터에서 본 공연이 올랐다. “재치 없고 합성된 엔터테인먼트”(옵져버),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으로 제작된 음산한 멜로드라마”(선데이 텔레그래프) 등 평단은 부정적인 평가를 쏟아냈다. 작품이 정통적인 뮤지컬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이런 비판에는 RSC가 상업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데 대한 불만도 깔려 있었다. 웨스트엔드로 갈 수 있을지 불투명했지만 카메론 매킨토시는 첫 날 5000장 티켓을 사준 관객들을 믿었다.

 

매킨토시의 믿음은 성공했다. 그해 12월 4일 팰리스 극장으로 옮긴 <레미제라블>은 가장 표를 구하기 힘든 공연이 되었다. 영국에서 <레미제라블>은 2004년 규모가 조금 작은 퀸즈극장(현 손드하임 극장)으로 한 번 더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도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웨스트엔드 대형 뮤지컬 중 가장 롱런하는 뮤지컬로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16년간 이어진 브로드웨이 공연

웨스트엔드 공연은 불안과 평단의 부정적 시선의 살얼음 속에서 시작했으나, 브로드웨이에서 <레미제라블>은 개선장군처럼 진출했다. 1987년 브로드웨이 공연은 사전 판매로 4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공연도 시작하기 전에 상당한 제작비를 회수했다. 영국 초연의 장발장으로 출연한 콤 윌킨슨이 브로드웨이에서도 장발장으로 나섰다. 그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레미제라블>은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작품상, 작곡상, 극본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조명상 등 작품에 관한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며 8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웨스트엔드 공연은 극장 규모를 줄여가며 공연을 이어갔지만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높았던 브로드웨이 공연은 16년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2003년 관객이 줄어들자 매킨토시는 3월 15일 브로드웨이 공연의 폐막을 예고했다. 그러자 <레미제라블>을 추억하는 관객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몰려들면서 폐막일을 두 달 이상 연기해야 했다. 상업적이지 않은 묵직한 주제의 대형 뮤지컬이 16년간 공연된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 시장에서는 여기까지였다. 결국 2003년 5월 18일 브로드웨이에서 6,680회 롱런 기록을 세우며 멈춰섰다. 당시로서는 <캣츠> 이후 최장기 공연이었으나 현재는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 <라이온 킹>, <위키드>, <캣츠>에 이어 여섯 번째로 장기 공연한 뮤지컬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공연, 10년에 걸친 세 번의 만남 

<레미제라블>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8년이다. 해외 유명 뮤지컬을 번역하여 올렸던 현대극장이 성스루로 진행되는 원작 중 일부 곡만을 추려서 만들어낸 약식 버전이었다. 영국인 페트릭 터커를 연출로 참여시키고, 의상과 무대, 조명에도 해외 스태프를 참여시키는 등 선진 공연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이 공연이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지불하고 들여온 공연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1985년 세계저작권협회에 가입하였고 이 법이 발효된 것이 1986년이었다. 이 조항은 불소급 원칙이어서 우리가 가입하기 이전 제작된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즉 1985년 영국에서 초연한 <레미제라블>은 국내에서 제작한다고 해도 도의적인 책임은 따르지만 법적으로는 문제되지 않았다.

 

1993년에는 예술기획 IMG와 롯데월드예술극장이 같은 시기에 <레미제라블>을 올리며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예술기획 IMG의 공연은 현대극장 버전으로 원작을 32곡만 살려 한국화하여 각색한 작품이었고, 롯데월드예술극장 버전은 원작 그대로 48곡을 부르는 3시간 공연이었다. 각각 특징이 분명했던 공연에 뮤지컬 전문 배우 형제 남경읍, 남경주가 서로 다른 작품에 출연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1996년과 2002년에는 CMI가 해외 배우와 스태프로 구성된 <레미제라블> 내한 공연을 올렸다. <레미제라블>의 매력을 제대로 선보여 국내 관객들에게 정통 뮤지컬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2012년 용인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을 거쳐 2013년 4월 블루스퀘어에서 한국어 라이선스 버전이 초연됐다. 장발장 역에는 정성화, 자베르는 문종원, 판틴 조정은, 에포닌 박지연, 앙졸라 김우형 등이 캐스팅되어 우리말로 제대로 된 <레미제라블>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관객들과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고 2015년 기존 배우들과 새로운 배우들이 결합된 버전의 재연을 선보였다. 2015년 공연에서는 장발장 역에 일본 <레미제라블>에 출연했던 양준모가 정성화와 더블캐스팅되었다.

 

올해 공연되는 <레미제라블>은 2015년 재연 공연 이후 8년 만의 공연이다. 초연과 재연 배우들 중 재연 앙졸라 역의 민우혁이 장발장으로, 초연 앙졸라 역의 김우형이 자베르로 출연하는 등 역할을 바꾸기도 하고, 초, 재연 판틴 조정은, 떼나르디에 부인 박준면 등 같은 배역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있지만 많은 배역에 새로운 인물들이 캐스팅돼 새로워진 2023년 <레미제라블>만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