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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닥터 지바고> 라라 [No.102]

글 |이민선 일러스트 | 권재준 2012-04-02 5,423

 

내 삶을 구원한 것은

 

혁명과 내전으로 얼룩진 현실을 누구 못지않게 힘겹게 버텨가는 중에서도 라라는 사랑이 그녀를 살아가게 만든 힘이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녀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음을.

* 이 글은 라라를 연기한 배우 전미도와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유리와 파샤, 그리고 코마로브스키까지, 좋든 싫든 이 세 남자가 당신 인생에서 큰 의미가 있었단 건 부인할 수 없죠?
흠, 셋 다 제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건 분명해요. 그들은 내 안의 여러 가지를 발견하게 했죠. 그것은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기도 했고, 나의 순수함과 고결함, 그리고 진정한 사랑…. 그 모든 것이 다 내 안에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서 내가 그 감정들을 느낌으로써 순간순간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죠. 그중에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감정적으로도 제어가 되지 않았던, 가장 강렬한 존재는 유리예요.


유리를 처음 본 날, 기억해요?
결혼한 첫날밤, 파샤를 쫓아 뛰어나갔을 때 집 앞에서 그를 만났어요. 처음 보았는데도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남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 같았어요. 그때 그는 내가 가장 잊고 싶어 했던 기억을 들춰내면서, ‘도대체 당신 마음에 어떤 열정이 있기에 누군가에게 총을 겨눌 수 있었냐’고 묻더군요. 전 그게 무척 신선했어요. 내게는 그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일 뿐인데, 그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그 당시엔 정신이 없었지만, 그와 헤어지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가 굉장히 남다르고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됐어요.


파샤가 신혼 첫날밤에 당신을 떠났죠. 왜 섣불리 그런 고백을 해버렸나요?
그러게요. 여자가 과거를 밝히면 안 되는 건데. (웃음) 파샤가 얼마나 순수한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물론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상처 받고 무너졌지만. 평생 죄책감을 지닌 채 숨기고 살고 싶진 않았어요. 그리고 첫날밤에 파샤와 단 둘이 남았을 때, 우리가 관계를 맺는 순간 그는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 같았어요. 그 사람은 모르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음을 내 몸이 알려줄 텐데, 파샤가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스스로 고백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당신 때문에 상처받고 떠난 파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 힘든 전쟁터까지 따라간 거고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가 제 남편이기 때문에, 그래서 끝까지 놓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떠나버린 그가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엄청 원망했죠. 물론 내 잘못도 있지만, 그래도 날 사랑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차라리 그날 결혼을 취소하겠다고 깨끗이 말해버리든가. 그것도 아니고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니 무척 힘들었죠.

행복했던 신혼 첫날에 그런 일을 겪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텐데.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코마로브스키와 내가 조금 기형적인 관계로 지냈으니, 가정을 꾸려서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어요. 파샤가 내게 기대하는 것을 잘 채워주면서요. 그런데 과연 우리의 결혼 생활이 순탄했을까 생각해보면 좀 의문이에요. 서로에게 바랐던 기대가 어느 순간 쉽게 무너졌을 것 같거든요.

남편을 찾으러 갔다가 전장에서 우연히 유리를 만났죠?
아주 잠깐 스쳤는데도 잔상이 오래 남는 사람 있잖아요. 유리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어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다시 만나니 굉장히 오랜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웠어요. 내 편을 만난 듯도 했고. 그래서 더 많이 의지할 수도 있었죠.


유리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았죠?
음, 그가 시인이어서인지 아님 그의 인성 탓인지, 그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남들과는 달랐어요.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여느 부르주아들처럼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모든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했어요. 하지만 전쟁 중이었고 서로 두고 온 가족도 있었고, 그 사람이 좋아도 그를 불편하게 할까봐 먼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참 웃기죠. 의도치 않았던 상황들이 우리를 떼어놓기도 했지만, 반대로 우리를 붙여놓기도 했어요. 전쟁터에서 헤어진 한참 후에 유리아틴에서 다시 만났거든요.


모스크바에서 시인이 왔다는 얘기에 그가 유리일 거라고 짐작하고선 반가웠겠군요.
결국 다시 만났을 때 무척 반갑기는 했지만, 화가 나기도 했어요. 왜 하필 여기로 왔을까, 내가 여기 있는 걸 몰랐을까, 우리가 이전에 헤어질 때 전했던 마음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죠. 내가 여기 있는 걸 알면서도 가족들과 같이 온 것은 무슨 생각에서일까, 난 그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데 그의 진심은 뭐였을까, 그를 만나기 전에 무척 괴로웠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계속 만나게 되는 걸 보면, 우리 사이엔 각자의 삶이 서로에게 아주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끈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무척 순탄치 않은 삶이었는데, 그래도 유리를 만나서 행복했나요?
그럼요. 그를 만나고 진정한 사랑을 느낀 것, 그게 저를 살아가게 만들었으니까요. 그가 느낀 사랑은 그의 시를 낳았고, 저와 그가 나눈 사랑은 우리 카탈리나를 탄생시켰어요. 카탈리나를 낳았을 때 난 정말 기뻤어요. 유리를 두고 유리아틴을 떠나 혼자서 카탈리나를 낳았지만, 코마로브스키가 도와준 덕에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었죠. 다시 그의 도움을 받기는 싫었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든 나를 도우려 했고 또 그런 힘든 상황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코마로브스키밖에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요.


그때는 누구든 그랬겠지만, 당신의 인생 또한 무척 기구했네요.
(한참 말이 없다가) 내가 그렇게 살아올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나를 보며 유리는 시를 썼고, 그 시를 통해 나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거예요. 전 무척 큰 사랑을 받은 거죠. 그의 시를 읽으면 그의 눈으로 나를 보게 되고, 거기서 그가 느껴져요,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제가 무척 힘들게 살았다고 보실 수도 있지만, 제 고통은 제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것이었고, 전 행복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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