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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일 테노레> 베커 여사, 용기로 길을 내다

글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오디컴퍼니 2024-05-27 1,811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매월 넷째 주 더뮤지컬 웹사이트를 통해 연재됩니다.

 


 

뮤지컬 <일 테노레>는 용감한 작품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세대를 초월해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일 테노레>의 서진연과 이수한도 그렇다. ‘문학회’라는 평화적인 예술 활동을 선택했으나,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조선의 자주독립’이다. 하지만 <일 테노레>는 노인이 된 윤이선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작품이다. 작품 안에서 이선은 국가의 목표와 부모의 바람보다는 ‘꿈’이라는 개인적 욕망에 집중한다. 오래도록 작품의 부제가 ‘꿈의 무게’였을 만큼, <일 테노레>는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과 고뇌 사이를 오간다. 개인의 꿈이 사치이던 시대를 배경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기꺼이 간다는 점에서 <일 테노레>는 용감하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법이다. 이선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부정한 꿈을 향해 나아가고 결국 이루어낸다. 그의 삶이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시대와 맞물리며 윤이선 개인의 독립은 그 자체로 국가의 자주독립을 은유한다. <일 테노레>를 ‘조선의 자주독립’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미국에서 온 중년의 선교사인 베커 여사는 극 중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보인다. 베커는 우연히 만난 이선에게서 일 테노레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가까이서 돕는 인물이다. 발성의 기초와 노래에 감정 담는 법을 알려주고, 뉴욕오페라단장을 초대해 더 많은 가능성도 열어준다. 베커는 윤이선이라는 조선 최초 테너의 시작점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독립을 도운 푸른 눈의 동료를 떠올리게도 한다.

 

 

<일 테노레>에서 ‘꿈’은 중요한 키워드다. 이선으로부터 시작한 꿈은 진연과 수한, 문학회원과 베커로 이어지며 성별과 나이, 국가를 초월해 확장된다. 졸업 후 오페라단에 있었던 베커는 조선에서 이선을 발견해 성장의 희열을 느끼고 슬픔을 아름다운 노래로 지휘하며 꿈을 이룬다. 그의 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곳, 낯선 시간에 낯선 방식으로 완성된다. <일 테노레>는 중년의 이방인 베커를 통해 꿈을 재정의한다. 뚜렷한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의 일부가 되는 것. 스스로 놓지 않는다면 늦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는 것. 나누다 보면 이루어지는 것. 때로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이 꿈이 될 수 있다는 것. 다양하게 확장된 의미가 서로 다른 지점으로 관객을 위로한다.

 

무엇보다도 베커의 존재는 ‘남존여비’적 사고가 공고했던 1930년대 조선을 흔들며 여성의 자주독립을 이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베커의 영감이 된 실존 인물은 미국인 선교사 캐서린 베이커다. 캐서린 베이커는 마흔여덟이던 1927년 조선에 입국해 13년간 이화여전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시에도 관심이 많아 여러 권의 시집을 발간하며 조선 여성들과 예술의 매력을 나눴다. 1884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조선에 내한한 선교사는 1,427명이었고, 그중 70%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19세기 말은 남북전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고 산업화가 가속화되며 여성에게도 고등교육의 기회가 주어진 때였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여성운동이 시작되었고, 1920년에는 참정권도 부여됐다. 독신 여성 선교사의 해외 파송도 가능해지면서, 아내와 어머니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는 여성의 욕망이 해외로까지 이어졌다. 그들은 교육의 기회가 없어 문맹률이 높고 경제권이 없어 의존적이던 조선 여성을 위한 교육과 의료 사업에 집중했다.

 

 

 

 

이러한 시대적 태도를 담은 베커는 조선 여성에 비해 용감하고 진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어떻게 남자 앞에서 노래하냐는 푸념에는 ‘Why not?’을 말하고, 이선과 함께 “자신 있게 당당한 날 봐”라고 노래한다. 자주독립을 위해 예술과 함께하는 문학회의 활동을 지지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도 흐트러짐 없이 해낸다. 새로운 세상에서 온 베커는 학생들에게 용기를 건네고, 그들은 제 안의 욕망을 들여다보며 ‘식민지 조선의 백성’이 아닌 ‘나’를 찾아간다. 그런 베커는 외교관으로 더 넓은 세계를 꿈꿨던 서진연 앞에 당도한 미래처럼도 보인다.

 

물론 <일 테노레> 속 베커는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이 강하고 본인의 서사는 아주 적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도 아주 주관적인 해석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권리와 잘못된 관습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대의에 가려져도, 외로워도 한 발씩 더 내딛는 사람들. 이들의 걸음이 쌓여 생긴 길 위에서 비로소 모두가 달릴 수 있다. 베커가 조선에 오지 않았다면, 이화여전에 <꿈꾸는 자들>의 아리아가 들리지 않았다면, 일 테노레의 꿈은 이뤄졌을까. 시작이 있어야 완성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감춰진 베커의 용기도 노래하자.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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