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이란 이름으로 하나!
한국과 일본의 대표 셜록홈즈가 한자리에 모였다.
2011년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 초연부터 지금까지 종횡무진 사건 현장을 활약 중인 송용진,
올해 초 일본 라이선스 공연에서 천재 탐정의 매력을 선보인 하시모토 사토시.
국경과 나이의 벽이 있어도, 두 배우 사이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저 오래된 친구처럼 편히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다름 아닌, 그들에겐 ‘셜록홈즈’라는 끈끈한 공통분모가 있었으니까!
한일 대표 셜록의 만남
송용진 환영해요. 형님!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웃음)
사토시 내 입장에선 용진 씨가 셜록홈즈를 먼저 연기한 형님인데… 물론 내가 나이가 많고, 흰 수염도 살짝 났지만. (웃음) 일본에서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 첫 공연 끝나고, 용진 씨를 비롯한 오리지널 팀과 함께 시파티를 했잖아요. 그때 정말 재밌었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또 만나게 돼 더 반가워요.
송용진 그때 엄청난 기대를 안고 일본에 갔었죠. <셜록홈즈>가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하다니! 내가 초연부터 쭉 참여하며 만들어 온 캐릭터를 일본 배우는 어떻게 표현할까? 그게 가장 궁금했어요.
사토시 우린 한국 오리지널 팀이 온다고 해서 어찌나 긴장했던지. 지금껏 그렇게 긴장한 공연은 처음이었어요.
송용진 배우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축복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깊이를 표현해낼 수 있으니깐. 그런데 형님 무대를 보니, 첫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깊이가 묻어나더라고요. 아, 이것이 배우의 깊이구나! 셜록은 괴짜지만, 진중한 면모가 복합적으로 잘 묻어나야 하거든요. 그걸 굉장히 잘 표현해줘서, 큰 공부가 됐어요.
사토시 원조 셜록에게 이런 칭찬을 듣다니! 정말 기분 좋은데요. 너무 피로에 지친 셜록을 연기한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송용진 에너지가 넘쳤어요!
사토시 사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 때문에, 고민이 많았죠. 어떻게 해야 일본어로 이 노래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언어가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사건을 노래로 풀어야 하니깐. 가사를 조금만 틀리면 사건을 못 풀어요. (웃음)
송용진 우린 고민도 같네요. (웃음) 셜록 역할이 진짜 어려운 게, 일상어가 없어요.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사건의 정보들을 표현하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단순 암기해야 해요. 보통 대사를 까먹으면, 상대 대사를 듣고 기억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작품은 그러지도 못하고. 형님도 이런 고통을 같이 느꼈다고 생각하니, 어휴! 남 일 같지 않네요.
사토시 셜록의 복잡한 머릿속이 무대 위 영상에서도 표현되잖아요. 셜록이 생각하는 단서들이 영상에 써있어서, 자칫 대사가 틀리면 관객들이 실수를 바로 알아차려요.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하면 대사가 생각나지 않을 때, 뒤를 살짝 돌아보면 답이 나와 있기도 하죠.
송용진 그 말 들으니 생각나요. 딱 한 번 실수한 적이 있는데, ‘춤추는 사람’에서 순간적으로 가사를 까먹은 거예요. 너무 긴장해서, 몇 소절을 그냥 흘려보냈죠. 정말 죽고 싶었어요. 그 때 영상을 봤으면 바로 알았을 텐데. 놀란 나머지 그런 생각조차 못했네요.
사토시 나중에 생각하면 아, 그때 그렇게 할 걸 싶은데, 그 상황에선 그게 참 안 돼요. 배우들은 다 똑같나 봐요.
송용진 전 연습 초반에 엄청 고생했어요. 셜록 캐릭터를 잘 못 잡겠더라고요. 더욱이 노우성 연출의 스타일은 원하는 바를 딱 제시하기보단 대화를 통해 계속 답을 찾아가는 스타일이거든요. 목표에 도달했을 때 강한 확신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과정이 험난해요. 한 번은 너무 답답해 물어봤어요. 영화와 드라마 속 셜록 중 어떤 스타일을 원하느냐고. 드라마 속 캐릭터가 좋다고 하셔서, 힌트를 많이 얻었죠.
사토시 전 초등학생이 푸는 수수께끼도 잘 못 푸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셜록의 천재성을 계산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본능적인 것으로 해석했어요. 천재라는 걸 너무 의식하지 않고, 내 안의 본능을 믿고 표현하려 했죠.
송용진 원작도 엄청 읽었어요. 소설 속 지문을 통해, 셜록은 어떤 사람일까? 조금씩 알아나갔죠.
사토시 셜록 캐릭터를 고민하고 있을 때, 프로덕션에서 용진 씨 공연 영상을 줬어요. 근데 무서워서 못 봤어요. 이게 원조 셜록이야! 선입견이 생기면 그대로 따라가게 되거나, 반대로 똑같이 안 하려고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그게 두려웠어요. 일단 내 안에 있는 걸로 표현해 보자.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영상을 봤는데, 아, 이런 거구나 싶었죠.
송용진 와! 나도 그래서 외국 라이선스 공연할 때 현지 영상을 안 보는데. 그래도 형님 공연을 떠올리면, 결국 우린 같은 길을 간 것 같아요. 참, 내년에 <셜록홈즈: 블러디 게임>을 공연한다고 들었어요. 제가 슬픈 소식 하나를 전해드릴까요? 정말 고생하실 거예요. (웃음)
사토시 앗, 시즌 1보다 힘들어요?
송용진 한 10배 정도? 제가 뮤지컬하면서 부른 노래 중에 가장 어려웠어요. 시즌 2 넘버들을 듣는 순간, 저랑 (김)도현이랑 멘붕이 왔죠. 그러니 미리미리 연습해두는 게 좋을 거예요. 힘내세요! 감바떼! (웃음)
사토시 이전에 용진 씨한테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하냐고 물으니, 김치 파워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요즘 열심히 김치 먹고 있어요. (웃음)
송용진 하하. 한국 사람은 김치죠! 시즌 2에서도 멋진 모습 기대할게요.
다른 듯 닮은 우리
사토시 한국 공연 문화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요. 한국은 더블캐스팅이 일반적이라던데, 연습실에서 각자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에 접근해요? 아무래도 서로 의식할 것 같은데.
송용진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걸 보여주고, 서로 그 모습을 관찰하고, 또 계속 토론해요. 각자 잘하는 것을 찾아내고, 좋은 게 있으면 서로 공유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스템 같아요. 전혀 의식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너무 의식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최대한 극대화해요. 때론 원캐스팅이 부럽기도 해요. 배우가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
사토시 한 번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하던 중에 폐렴이 걸린 적이 있어요. 원캐스팅이다 보니, 엄청 독한 약을 먹고 죽을힘을 다해 무대에 올랐죠. 안 그래도 셰익스피어 대사가 어려운데, 약을 먹으니 정신이 더 몽롱해서 힘들었어요. 그럴 때 더블캐스팅이 참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송용진 각기 장단점이 있는 거 같네요. 일본에선 연습을 어떻게 해요? 우린 보통 2~3개월, 그리고 한 달 정도 앞두곤 지옥의 텐투텐이라고, 아침 10부터 밤 10시까지 몰아쳐서 연습하거든요.
사토시 길어도 한 달 반 정도 연습해요. 보통 1시부터 9시까지. 원캐스팅이다 보니 어두워지면 다들 집중력이 떨어지거든요.
송용진 일본의 창작뮤지컬 시장은 어때요?
사토시 활발하지 않아요. 안타깝지만, 일본에서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창작 작품이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 뮤지컬 하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가까운 나라 한국에서 고퀄리티의 작품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정말 대단해요. 한국 뮤지컬은 점점 진화하는 거 같아요. 일본으로 많이 소개돼서, 일본 공연계에 좋은 자극이 되었으면 해요. 조금 전에 <더 데빌> 음악도 살짝 들어봤는데, 음악이 지닌 힘이 굉장하던걸요. 언어의 힘도 큰 것 같아요. 지금 느낀 건데, 한국말은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들리거든요. 반면 일본말은 축 처진 느낌이 나요.
송용진 일본엔 좋은 희곡과 연극들도 많잖아요. 공연계에서 양국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좋겠어요. 그럼 같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질 텐데.
사토시 동감이에요! 한국 공연장에 와본 건 오늘이 처음인데, 정말 예술적이네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두근두근했어요. 자연히 작품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어요.
송용진 반대로 전 일본 공연장이 부러웠어요. 기술적인 면이 굉장히 앞서 있더라고요. 뉴욕이나 런던에서 공연을 많이 봤는데, 음향은 일본 공연장이 최고였어요.
사토시 일본 배우들이 노래를 잘 못하다보니, 그걸 커버하려고 음향 시설에 힘을 준 거 아닐까요? (웃음)
송용진 실은 편견이 있었어요. 일본 배우들은 신체 트레이닝이 잘 되어 있지만, 가창력은 좋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가서 확인해보니 아니던데요. 다들 가창력이 정말 좋았어요.
사토시 하지만 현실에선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에 한국 배우가 캐스팅됐잖아요. 점점 저의 일자리를 뺏기고 있답니다. (웃음)
송용진 일본 대표 배우께서 무슨 말씀을! 최근엔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요?
사토시 뮤지컬 <오션스 일레븐>. 인기 그룹 smap의 카토리 싱고도 출연하는데, 전 거기서 베네딕트라는 악역을 맡았죠. 그리고 내년엔 존 캐어드 연출의 <십이야>, 그리고 <셜록홈즈: 블러디 게임>,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의 <맥베스>에 출연할 계획이예요.
송용진 정말 주옥 같은 작품들만 하시네요. 내일 있을 <셜록홈즈 뮤지컬 콘서트>도 일본 최고 배우와 함께할 수 있어, 더 기대돼요. 한국의 <셜록홈즈> 팬들에게 일본의 셜록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잖아요. 형님이 워낙 멋있으셔서, 한국 관객들이 다 일본으로 가버릴까 봐 걱정도 되지만.
사토시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을 못잘 것 같아요. 외국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처음이거든요. 내가 느낀 것을 열심히 표현해야, 이 작품을 만든 제작진들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될 테니. 내일 정말 열심히 할게요!
송용진 <셜록홈즈> 오리지널 프로덕션에겐 지금 다시 시즌 1을 공연하는 게 큰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사활을 걸고 준비 중이에요. 그리고 연출은 벌써부터 시즌 3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전 초연부터 함께한 배우인 만큼, 끝까지 힘을 쏟아 부으려고요! 먼 훗날 꿈은 언젠가 런던에서 영국 사람들이 <셜록홈즈>를 공연하는 거예요. 그때 저희 둘이 런던에 같이 가서, 건방지게 앉아 영국 배우들에게 연기 한 번해 보라고 하면 어때요? (웃음)
사토시 하하. 꼭 그러고 싶네요. 영국 사람들이 <셜록홈즈>를 보고 어떻게 느낄지 굉장히 궁금한데요?
송용진 저도요. 꼭 그런 날이 오기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4호 2014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인터뷰 | [PEOPLE & PEOPLE] <셜록홈즈> 송용진과 하시모토 사토시 [No.134]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4-12-03 5,719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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