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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ketch] ‘명작 뮤지컬의 이해’ 강좌 <오페라의 유령> [NO.97]

정리 | 김유리 2011-10-18 5,788

원종원 평론가에게 듣는 명작 뮤지컬의 이해

<오페라의 유령>의 탄생과 위력


<오페라의 유령>과의 인연은 20여 년 전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80년대 말, 여름방학에 혼자 영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하루는 친구가 내게 뮤지컬 티켓을 내밀었는데, 공교롭게도 다른 친구들과의 파티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고민을 하고 있으니 친구들이 말했다. “그 표가 얼마나 구하기 힘든 건데, 공연을 봐. 파티는 내일 하면 되지.” 그렇게 가게 된 극장, 자리도 참 좋았다. 2층 가운데 자리. 아무것도 모른 채 갔던 공연을 보고 혼자 펑펑 울고 있으니 옆에 앉은 영국인 아주머니가 손수건을 줬다. 정말 대단하지 않냐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자신은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볼 때마다라고? 그래서 얼마나 봤는지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I can`t remember!”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내겐 문화적 충격이었다.                                               

 

 

 

<오페라의 유령> 이전의 유령
‘오페라의 유령’은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 ‘야수’와 더불어 원래 서양의 4대 괴기담의 주인공 중 하나다. 뮤지컬 이전에도 이미 인기가 많아 영화와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형되어 등장했다. 그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대성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령의 캐릭터에 대해 로맨틱한 느낌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유령이 나왔던 작품은 대부분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유령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걸로 종결되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살아나서 사람을 놀래는 전형적인 괴기 영화였다. ‘오페라의 유령’ 캐릭터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흑백 무성영화 시절의 배우 론 채니(1883~1930)다.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는 초반에 미스터리, 괴기 영화를 무대화한다는 아이디어로 흑백 무성영화의 이미지를 많이 참고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애초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웨버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은 <나인>의 작곡가이며 토니상 수상자인 모리 예스톤이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의를 했고, 그 이야기가 웨버에게 들어가게 되어 웨버가 1986년 자신의 작품으로 먼저 내놓게 되었다는 것. 그에 대한 충격으로 예스턴이 “아이디어는 입 밖에 나오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는 1991년 <유령>을 발표했고, 앞서 <오페라의 유령>의 흥행으로 그 파생 상품을 찾아다니는 관객들에 의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 <유령>이 국립극장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그때는 해외 작품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많지 않은 때라 <유령>의 포스터가 반쪽 오페라 가면에 장미가 있는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의 이미지로 만들어졌던 과감한(!) 일화도 있다.

 


`뮤지컬계 미다스`가 만든 흥행 공식과 비하인드 스토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잘 알려진 대로 기자 출신 추리소설 작가인 가스통 르루의 원작을 기반으로 브로드웨이에서 21개의 토니상을 받은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합작품이다. 흔히 이 작품에 대해 작곡가 웨버의 음악을 먼저 떠올리지만, 괴기물을 러브 스토리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연출가의 혜안이었다. 그의 아이디어가 <오페라의 유령>의 메가 히트의 배경이 됐다고 볼 수 있겠다.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뮤지컬계의 미다스’로 영국에서 뮤지컬 사업으로만 재계 60위를 달리는 거물이다. 그는 뮤지컬이 왜 상업성을 가지고 산업화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살아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는 Really Useful Group(RUG)이라는 뮤지컬계의 전방위적인 사업을 다루는 그룹을 만들어 자신이 만든 작품의 매출과 여러 가지 비즈니스를 관장하고, 이를 통해 뮤지컬을 단지 예술에서 산업적인 단계로 들어서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뮤지컬로 영국의 국위를 선양했음을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Lord’라는 작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많은 작품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는데, 2000년대 후반 <사운드 오브 뮤직>, <조셉 앤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등의 작품의 오디션을 TV에서 진행하면서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인기가 많은 만큼, 비하인드 스토리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사랑의 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 <오페라의 유령>을 만들기 전 웨버는 <캣츠>로 성공을 했고, 그 안에서 고양이를 맡았던 한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다. 공연이 끝난 후 전처와 이혼을 하고 두 번째 신부를 맞이했던 이야기는 타블로이드를 들썩이게 했다. 다들 잘 알고 있다시피 그 배우는 사라 브라이트만이다. ‘밤의 음악(Music of the Night)’이 웨버가 그녀에게 생일 선물로 준 노래였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사실. 항간에는 ‘음악의 신’인 유령의 모습에 웨버가 스스로를 투영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그렇기에 웨버와 브라이트만의 이별은 이미 작품을 통해 예견되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는 ‘클래식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다?’에 관한 것이다. 웨버의 아버지는 지휘자,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그리고 동생은 첼리스트 줄리앙 로이드 웨버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그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장르에서 자신의 재능을 소모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이 의견에 대한 답변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극장주 피르맹과 앙드레의 노래 중 ‘외국어로 꽥꽥 소리 높여 부르면 좋은 음악인 줄 안다’는 가사 등이 그 증거라는 것. 이들은 웨버도 클래식 앨범을 냈다는 점을 들어 그가 클래식을 못해서가 아니라 뮤지컬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그 해답은 웨버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비하인드 스토리는 ‘가장 돈을 많이 벌었다?’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현재까지 이 작품의 총 매출은 6조 2천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액수는 모든 영화와 연극, 발레, 오페라 등 티켓을 판매하는 모든 종류의 작품을 다 합쳐도 도달하지 못할 만큼의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2위는 무엇일까? 3조 8천억 원의 <캣츠>다. 흔히 영화가 가장 큰 수익을 낼 것이라 생각하지만, 공연의 티켓 가격은 일반적으로 영화 티켓의 몇 배이지 않나.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초연한 이후 24년째 오픈 런 시스템으로 공연되고 있어 흥행은 현재진행형이니 앞으로 또 어떻게 기록을 갱신해 갈지 모를 일이다.


<오페라의 유령> 이후 공연계에서는 새로운 흥행 공식이 등장했다. ‘아름다운 여자와 비정상적인 남자가 만나면 흥행한다’는 것과 ‘독한 캐릭터는 성공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예는 <미녀와 야수>와 <노트르담 드 파리>, <지킬 앤 하이드>, <드라큘라>다. 대중적 취향이 바뀌고는 있지만 이러한 고전적 공식은 사실상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선셋 불러바드>의 광기에 빠진 잊혀져 가는 여배우 ‘노마 데스몬’과 죽을 수 없는 형벌을 받은 캐릭터 ‘드라큘라’다. <오페라의 유령> 이후 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찾기 위한 제작자와 작가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오페라의 유령>, 그리고 <러브 네버 다이즈>
2001년의 한국어로 제작된 <오페라의 유령>은 국내에 상업 뮤지컬의 새 지평을 연 역사적인 작품이다. 140억의 예산으로 7개월 동안 공연되어 190억의 수익을 남겼다. 이로 인해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순익 50억 원 중 수익의 10%를 내도록 했던 공연발전기금 규정으로 19억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만한 규모의 공연도 없었고, 성공한 공연이 많지 않아 큰 문제가 된 적이 없었지만, 큰 제작비를 들여 제대로 만드는 작품이 늘어날 것을 생각했을 때 이는 산업에 장애가 되는 제도였던 것. 결국 소송을 통해 이 제도는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오페라의 유령>을 기점으로 뮤지컬은 배고픈 예술에서 ‘제대로 만들면 수익을 낼 수 있는 산업’으로 변모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국내에 블록버스터 급 뮤지컬들이 앞 다투어 소개되었고, 뮤지컬 시장은 나날이 커져 2011년 현재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의 공연 전체의 매출 규모에서 1/2 이상이 뮤지컬 티켓 매출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오페라의 유령>의 10년 뒤 이야기 <러브 네버 다이즈>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전성기 때만큼의 작품을 기대하긴 어려웠지만 웨버 특유의 대중의 마음을 살살 자극하는 선율은 여전했다. 평론가들에게도 좋은 평점을 받진 못했지만, 영국의 어느 기자가 쓴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평가를 받진 못하더라도 <오페라의 유령>을 본 사람들의 절반만 이 작품을 보더라도 보기 드문 흥행 대박이 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의 위력인 것 같다.          

 

 

<더뮤지컬> 명작 뮤지컬 강좌 안내
7월 10일| <맘마미아> 김문정 음악감독
7월 24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이지나 연출가
8월 21일| <에비타> 박병성 편집장
9월  4일| <오페라의 유령> 원종원 평론가
10월 9일| <스위니 토드> 박천휘 번역가
11월 6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지혜 작곡가
12월| <컴퍼니> 조용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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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7호 2011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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