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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라카지> 고영빈 [No.106]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2-07-30 4,800

 

그 남자의 등, 고영빈

여유라는 미학

 

 

“진한 보랏빛 립스틱이요.” <라카지>에 어울리는 립스틱을 골라달라는 질문에 고영빈은 주저 없이 색을 골랐다. “멍이 심하게 들면 자국이 없어지기 전에 진보랏빛을 띠잖아요. 화사해 보이면서 아픔이 느껴지는 색깔이기도 하고. <라카지>는 소외된, 하지만 그만큼 단단한 사람들의 집합소니까.” 그는 지금까지의 역할들이 고영빈이라는 배우가 대사를 외우고 연기하면 되는 캐릭터였다면, 조지는 자신에게 없는 면을 상상해서 그려내야 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와이프를 사랑하고, 자식은 더 사랑하고.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강하고, 그렇게 큰 클럽을 운영해 가는 데 흠이 없고. 조지는 남자다우면서 한편으론 굉장히 여린 면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를 만들어야 해요. (…) 아들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처음엔 ‘철없이 하는 이야기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아이의 진실한 눈빛을 보면서 흔들려요. 혹시 이게 진짜면 어떡하지, 그럼 내가 걸림돌이 될 텐데 하는 걱정을 하죠. 아들의 결혼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이 돼야 하는데, 그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조지는 어느 정도의 역경을 겪어 냈는지 그런 일 조차도 ‘오케이’ 하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요.”

 

캐릭터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던 그가 조지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남자다운 남자죠.” 그렇다면 그가 조지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데 느끼는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장성한 아들이 있는 아버지를 연기하기엔 제 삶이 아직 짧아서 어설픈 느낌이 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조지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걸 완벽하게 해내야겠다는 욕심을 내진 않으려고요. 예전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할 거라는 욕심 때문에 힘들어 했다면 이제는 ‘뭘 그것까지’ 하면서 내려놓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 하게 되는 거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조금 알게 되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코미디, 쇼맨십, 센스 같은 단어와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배우 고영빈이 10년 만에 서게 되는 쇼 뮤지컬 무대에서 능수능란한 코믹 연기를 위해 괜한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조지가 가진 강인함도, 바로 내려놓을 줄 아는 데서 나오는 여유니까. 그래도 쇼 뮤지컬이기에,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까. “조지는 코미디를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아니에요. 중심이 돼서 양쪽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수 있도록 조율해 주는 역할이죠. 그래도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것과는 다른 캐릭터이기 때문에 <라카지>를 통해 제 연기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열정과 열성을 분별할 줄 아는 현명함에서 나오는 여유. 배우가 우아하게 나이 먹어간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걸까.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6호 2012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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