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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일본에서 보내온 김지현의 편지

사진제공 |토호연극부 정리|정세원 2009-10-13 7,011

지난해 뮤지컬 <시카고>에서 절도 넘치는 카리스마를 표출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뮤지컬 배우 김지현이 극단 토호가 제작하는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존스턴 부인 역을 맡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8월 7일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후 지난 시간을 돌아본 사연을 <더뮤지컬>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안녕하세요, 김지현입니다. <시카고>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일 년이 되었네요. 모두들 안녕하시죠? 저는 일본의 뮤지컬 제작사 토호가 만든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극단 시키를 그만둔 지 3년여 만에 처음으로 다시 서는 일본 뮤지컬 무대예요. 새로운 컴퍼니와의 작업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동시에 첫 작업에 대한 두려움이 컸답니다. 지난해 <시카고>로 13년 만에 한국 무대를 밟았을 때처럼 말이에요.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제가 맡은 역은 존스턴 부인이에요. 처음엔 주위 분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죠.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 제 앞에는 언제나 일본어라는 높고 두꺼운 벽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특히 이번 작품은 그동안 제가 출연한 뮤지컬에 비해 대사가 무척 많은 편인데다, 지금껏 한번도 연기해본 적 없는 캐릭터였거든요. 9명의 아이들을 낳았지만 가난 때문에 쌍둥이 중 한 명을 다른 집에 보내야 했던, 생활력 강한 엄마. 그리고 관객과 작품 사이에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소통시켜야 하는 내래이터 역까지, 모든 것이 모험이었어요.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정하기까지 많은 에피소드와 갈등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블러드 브라더스>의 음악이었어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출연을 결정하자마자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60년대 영국사회의 시대상과 계층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을 앞두고 영국이라는 나라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거든요.


이 작품의 오리지널 연출가인 글렌 월포드가 이번 공연의 연출로 참여했어요. 한국에서 공연할 때도 그녀가 참여했다죠?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대본 각색 작업이 지연되면서 전체 연습이 늦어졌는데, 저는 일본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10여 년 전의 대본을 구해서 먼저 연습을 시작했어요. 일본어 학교 때 인연을 맺은 선생님들과 극단 시키의 선후배 등에게 부탁해 녹음한 일본어 대사를 매일 듣고 억양을 익히는데 중점을 뒀죠. 그런데 뜻밖에도 글렌 연출은 대사와 억양에 신경 쓰기보다는 순간순간의 감정에 더 충실해달라고 요구했어요. 조연출이 옆에서 대사를 불러주고 저는 감정 연기에 더 집중해야 했죠. 어쩌다 제가 외운 대사로 연기할 때면 화를 낼 정도였다니까요.(웃음) 관객과의 소통을 유난히 강조하는 연출가의 요구에 조금은 혼돈도 있었지만, 많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공연 오픈을 일주일 남겨놓고 전혀 예상 하지 않았던 손님이 찾아오셨지 뭐예요. 그만 감기에 걸려버린 거예요. 공연 안팎으로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한 일주일 정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거든요. 결국 면역성이 떨어졌나봐요. 글렌 연출가의 독특한 연습 방법 덕분에 런 스루는 겨우 한 번밖에 해보지 못했는데, 더 이상은 연습에 참여할 수도 없게 된 거예요. 마음은 급하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링거를 맞으며 쉬어야 한다니…. 정말 큰일이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작품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연기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일본어에만 신경을 쓰느라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노력이 부족했거든요. 하나님이 주신 황금 같은 시간이었죠.

 

프리뷰 공연을 할 때도 링거를 맞고 무대에 올랐어요. 기대만큼의 파워풀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아직 하루가 더 남았다’는 믿음으로 관계자들을 안심시켰어요. 놀라운 일이었죠. 지금까지 무대에 서면서 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조바심을 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제가 긍정적인 기운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더라고요. 기분 좋은 설렘으로 첫 무대를 기다렸어요.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그동안 연습했던 모든 것들을 무대 위에서 풀어냈죠. 세 시간의 러닝 타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 앞에 놓여 있던 장벽 하나를 뛰어 넘은 것 같아 정말 기뻤어요. 이 기쁨을 한국 관객들과 함께 나누었다면 더 좋았겠지요. <블러드 브라더스>를 무사히 마친 후에는 <거미 여인의 키스>에 참여할 계획이에요.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늘 노력할게요.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한국 무대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월 7일~9월 27일 / 도쿄 히비야 씨어터 크리에(シアタ-クリエ)
개인 홈페이지 www.musical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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