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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로맨틱 드라마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싱글즈> [No.75]

글 |박병성 2010-01-07 8,030

영화 <싱글즈>는 2003년 권칠인 감독이 연출하고 장진영(나난), 엄정화(동미), 이범수(정준), 김주혁(수헌) 등이 출연해 그해 81만 6,710명이 관람하면서 흥행 성적 9위에 올랐다. 29살 동갑내기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한 생각들을 솔직하면서도 낭만적인 감성을 잃지 않고 그려내서 젊은이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제8회 여성관객영화상’에서 그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94년 일본 후지 TV에서 히트를 친 드라마 <29세의 크리스마스>와, 이 드라마를 다시 꾸민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러나 영화 <싱글즈>의 작가 노혜영은 “드라마는 자막이 없어 포기했고, 소설은 굳이 찾아 읽기 싫었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실제로 <싱글즈>에는 나난이 극 초반에 겪는 일련의 사건들-실연, 전직, 원형탈모-과 이성 친구들끼리 한집에서 산다는 설정은 같지만 상당부분 한국적인 상황을 반영했다. 나난이 좋아하는 수헌(원작에서는 키사)의 캐릭터만 보더라도 원작에서는 그의 집안을 대단한 가문으로 설정해서 그로 인해 나난과의 연애에 있어 어려움을 겪지만, <싱글즈>의 수헌은 트렁크를 열었다 닫아야만 앞문이 열리는 고물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가난한 증권맨으로 등장한다.
상사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는 동미나, 상사의 잘못을 덮어쓰고 전출을 가야 하는 나난을 통해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고 있는 믿기지 않은 현실을 담아냈다. 절친한 친구들끼리 나눌 법한 욕지거리가 반은 섞인 대화나 “우리 나이에 목돈 쥘 방법은 결혼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동미의 생각들이 당시 여성들의 솔직한 심리를 대변했다. 그럼에도 멋진 남자 수헌과의 결혼을 앞두고 “내 삶이 똥인지 된장인지 더 살아봐야겠다”는 나난의 삶에 대한 주체적인 결정은 이 작품이 서른을 맞는 한 여성의 성장 드라마임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영화 <싱글즈>는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되었다. 대표적인 관점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는 시각과, 기존의 멜로드라마의 성격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멜로드라마를 제시한다는 시각이다. 동미와 정준이 경제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결혼이라는 결합 없이 동거하고 있는 모습이나, 나난을 포함한 세 친구가 그 어느 가족 구성원보다도 애틋한  관계로 살아가는 모습은 대안적인 가족의 형태로 보여지기도 한다. 또한 동미와 정준이 실수로 아이를 갖게 되는데, 동미는 정준과 결혼할 마음이 없으면서도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그런 동미를 설득하던 나난은 동미의 결정을 지지하며 자신이 아빠가 되어줄 것이니 잘 키워보라고 한다. 레즈비언도 아닌, 결혼을 하지 않은 두 여자가 엄마와 아빠 역할을 나눠 맡으면서  아이를 키워가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가히 파격적이다.
멜로드라마에서 결혼을 거부하는 드라마 형식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나듯, <싱글즈>는 2000년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따르면서도 사랑의 완성이 아닌 사랑의 지연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멜로드라마와는 구별되는 양상을 보인다.

 

보수적인 장르를 반영한 스토리 변화


뮤지컬 <싱글즈>는 국내 무비컬이 본격적인 트렌드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2007년 6월에 공연되었다. 앞서 <댄서의 순정>이 공연되었으나, 평단으로부터 모진 비판을 받은 터라 부담이 매우 컸다. 그러나 <싱글즈>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무비컬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비교적 지혜롭게 풀어나갔다. 원작에서 살릴 것은 살리고, 무대용으로 바꿀 것은 바꾼 덕분에 영화와 별개로 꽤 즐길 만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경향신문 2007년 6월 18일자)는 평이나, “<싱글즈>는 영화를 품고 가되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스토리나 대사를 보면 영화를 충실히 따라가는 듯 하지만, 장면 구성이나 무대 세트 등에서 독창성이 느껴진다”(국민일보 2007년 6월 17일자)는 등 언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위 언론의 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싱글즈>는 영화의 스토리를 비교적 그대로 쫓아간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대사를 그대로 가져와서 영화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지루함을 주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즈>는 영상을 무대로 비교적 모범적으로 옮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이 가진 재미를 극 형식으로 잘 각색했으며, 때로는 무대만의 재미를 주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기도 한다. 
미세한 변화도 감지된다. 영화와 뮤지컬은 모두 나난과 동미, 정준, 수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무게 중심이 나난과 동미에, 그중에서도 나난 쪽에 조금 더 기울었다. 즉, 순진한 나난이 실연과 이직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서 일과 자신을 사랑 하게 되는 일종의 성장 스토리인 셈이다. 뮤지컬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문제는 수헌이라는 캐릭터이다.
영화 속에서 수헌은 증권맨으로 나난이 전 직장상사에게 희롱을 당할 때는 주먹을 날리는 남자다운 면모를 보이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에 찾아와 유치한 농담을 하는 등 빈틈이 보이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캐릭터이다. 영화에서 수헌은 동미나 정준과 같은 그룹으로 묶일 수 있다. 그러나 뮤지컬에서 수헌은 극 초반 나난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넬 때의 어설픈 행동을 제외한다면 매우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2007년 초연에서는 가수 이현우가 수헌 역에 캐스팅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손호영, 이종혁, 2009년에는 앤디가 캐스팅되는 등 연예인을 캐스팅해서 선망하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뮤지컬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수헌이 좋은 집안의 남자임을 알 수 있다. 영화와 다르게 뮤지컬에서는 나난이 수헌과의 결혼을 미루자는 이야기를 정장을 차려입고 수헌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에 말하게 한다. 이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무수히 보아왔던 부유한 집안의 남자가 여자를 부모님께 소개시키러 가는 전형적인 클리셰로서, 수헌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상류층 집안이었던 일본 원작과 맥을 같이 한다.
수헌을 여성들이 결혼하고 싶은 정형화된 이상적인 남자로 설정해서 ‘수헌과의 결혼’과 ‘자신의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나난의 결정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 것이다. 나난은 이상적인 수헌을 포기하고 자신의 일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인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처음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발령받았을 때 괴로워하던 나난이 차츰 적응해가면서 매니저 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영화 전체에 걸쳐 점진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보여주기 어려운 뮤지컬에서는 노래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압축시킨다. 나난이 패밀리 레스토랑에 발령받고 부르는 노래가 ‘여기요, 조건반사’이다.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여기요’ 하며 나난을 찾고, 그녀는 손님들에게 부대끼다 ‘잠깐 기절하고 주문받겠습니다’ 하며 쓰러진다. 이 노래는 후반부에서 다시 되풀이되는데 상황은 정반대이다. 새로운 신입사원 앞에서 능숙하게 주문을 받는 나난을 보고 기에 질려 신입사원이 도망가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리프라이즈된다. 이처럼 노래를 반복 사용하면서 나난이 서서히 자신의 일에 익숙해져가며 충실히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뮤지컬의 스토리상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동미가 정준에게 임신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동미는 정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스스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나난은 이를 말리다가 자신이 그 아이의 아빠가 되어주겠다며 위로한다. 비(非)혼모 동미의 혁명적인 결정과 두 여자가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호언은 기존의 가족 모델을 파괴하고 대안적인 가족 모델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크리스마스날 회사 앞에서 동미가 나난을 기다리고 있고, 늦게 나타난 나난이 동미의 화를 풀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서른이 되기 전에 일이나 사랑 그 어느 것이든 확실해지기를 원했던 동미와 나난은 마치 연인처럼 혹은 부부처럼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함께 맞는다. 이러한 에필로그 장면은 대안적인 가족의 모습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이러한 급진적인 가족 형태에 대한 암시를 거부한다. 동미가 정준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임신을 알리려는 순간 정준의 옛 여자친구 지혜가 집으로 찾아와 친구를 위해 보내주는 상황으로 바꾼 것이다. “원래 ‘쿨한’ 영화 속의 동미를 좋아했던 관객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정준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쿨해지는’ 동미도 매력적이다.”(경향신문 2007년 6월 18일자) 그런 동미가 시각에 따라 멋있을 수도 있지만 원작이 가진 대안적 가족에 대한 담론은 축소된다. 뮤지컬은 보수적인 장르이고 급진적인 선택을 한 동미를 좀더 이해시키기 위해 의리 있는 동미로 만든 것이다.

 

영화를 효과적으로 재현한
무대화와 뮤지컬 넘버

앞서 말한 대로 뮤지컬 <싱글즈>는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무대적인 상상력과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뮤지컬로 변신했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나난의 하이힐 침대는 로맨틱하고 감각적인 작품의 성격을 잘 표현해준다.
영화 <싱글즈>는 비교적 많은 장소가 필요한 작품이 아니지만 뮤지컬에서 영화의 흐름을 그대로 쫓아가다 보니 잦은 장소 이동이 필요했다. 그러한 이동은 빈 무대와 상징적인 소품의 변화를 통해 신속한 장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나난이 직장상사의 책임 회피로 이직 명령을 받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무대 뒷부분의 천부장과 나난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면 무대 공간은 사무실로 변한다. 나난이 전직을 명령받고 무대 가운데로 나와 상수와 하수에 등장한 동미와 정준에게 전화를 걸면 나난이 있는 곳은 거리 혹은 나난의 집이 된다. 회사를 그만두라는 동미와, 일단 버티라는 정준이 마치 삼자 통화를 하듯 극을 진행한다. 이 장면은 뮤지컬 넘버 ‘사표 내 vs 견뎌’로 이어지고 이 노래가 끝나자마자 “하이락 클럽으로 발령받은 나난입니다”라는 나난의 대사와 함께 양편에서 손님들이 간이의자를 들고 등장하면 무대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변한다. 이처럼 장소를 암시하는 간단하고 상징적인 소품을 이용해 공간을 이동하면서 영화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따라간다.

영화 <싱글즈>는 로맨틱 드라마에 속하면서 상당히 코믹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동미의 거침없이 직설적인 말투나, 친구도 연인도 아닌 동미와 정준의 이상한 관계로 벌어지는 해프닝, 그리고 엉뚱하고 어눌한 나난의 실수에서 코믹한 요소가 좀더 강조된다. 뮤지컬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을 모두 수용하면서 코믹한 상황을 강조한다. 영화에서 동미와 정준, 그리고 동미의 남자친구가 함께 아침을 먹는 장면에서는 동미와 정준이 눈빛으로 주고받는 말을 영상 위의 글로 보여주어서 재미를 준다. 뮤지컬에서는 동미가 자신과 정준의 이상한 동거를 남자친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정준을 게이라고 속였다는 새로운 설정을 가미한다. 또한 동미가 직장상사를 거짓으로 유혹해서 망신을 주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을 직원으로 설정하고 동미에게 농락당한 상사가 팬티 바람으로 온갖 위엄을 부리며 객석 통로를 지나가게 만든다. 이렇듯 코믹한 상황을 강조해서 뮤지컬은 로맨틱 드라마라기보다는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성격을 띠게 된다. 코믹적인 요소가 강조되면서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급진적인 가족에 대한 대안들이나 의미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싱글즈>에는 총 19곡의 뮤지컬 넘버가 사용된다. 뮤지컬 음악은 매우 효과적으로 노래들이 삽입되어 자연스럽게 영화의 흐름을 쫓아간다. 그러나 주제를 드러내는 테마 음악을 강조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뮤지컬의 첫 장면은 영화에서와 같이 모닝콜로 시작한다. 연인에게 온 전화 같지만 알고 보면 모닝콜 서비스이다. 나난을 깨우던 전화 속 목소리의 말투가 갑자기 달라지면서 ‘이십대의 마지막을 잘 보내셔. 이제 넌 노처녀야!’라며 30대를 맞기가 두려운 나난의 불안한 심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곡이 바로 ‘29’이다. 최승자 시인은 「삽십세」라는 시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했다. 최영미의 인기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등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이 나이대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이십대를 마감하는 스물아홉 살을 ‘청춘의 종착역’인양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영화에서도 동미와 나난, 정준의 나이를 스물아홉으로 설정한 데에는 이러한 의도가 담겨있다. 뮤지컬에서 첫 뮤지컬 넘버가 미래를 불안해하는 나난의 심정을 담은 ‘29’로 시작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즉 불안한 20대를 마치고 자신 있고, 당당한 30대를 맞이하는 나난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초연 공연에는 있었지만 소극장으로 오면서 ‘이제 서른’이라는 곡이 사라진 것은 아쉽다. 이 곡에서는 청춘의 끝이 아니라 서른을 새로운 시작으로 맞는 나난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성장한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의 시간이 매우 소중한 추억이었음을 노래하는 ‘우리’라는 곡이 마지막 곡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여느 곡에 비해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싱글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담배’라는 곡이다. 이 곡은 정준이 동미와 화해하기 위해 술을 마시다가 만취해 여자친구 지혜를 생각하며 부르는 곡이다. ‘담배’의 가사는 이렇다. ‘그녀는 내게 말하지/ 내가 좋은 남자라고/ 난 행복했어/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까/ 그녀는 내게 또 말해/ 내가 좋은 사람이라/ 그래서 싫대/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서/ 그래서’ 매우 가슴에 와닿는 실제적인 대사와 상황 그리고 감미로운 멜로디가 어우러진다. 뿐만 아니라 이 곡은 동미가 정준을 여자친구 지혜에게 보내주고 나서 쓸쓸한 감정을 담아 부르는 ‘왜’라는 곡으로 반복된다. 비록 가사는 다르지만 같은 멜로디를 사용하면서 ‘담배’에서 지혜를 떠올리며 부르는 정준의 심정과 정준을 보내주고 난 후 동미의 심정을 같은 맥락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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