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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닐 사이먼, 웃음으로 포장된 페이소스의 감칠맛

글 | 현수정 2009-01-20 9,933

국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닐 사이먼 관련 자료들을 찾기란 보물찾기 수준으로 어렵다. 그의 대표적인 희곡집들도 대부분 절판 혹은 품절된 상태. 영문학자들은 ‘닐 사이먼의 작품들은 학계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너무 상업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닐 사이먼의 작품들은 참으로 상업적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의 공공 방송인 PBS를 비롯한 공신력 있는 매체들에서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의 상업성에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며 오랜 기간 변함없이 사랑받는 희극 속에는 웃음,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닐 사이먼을 ‘히트 메이커(Hit Maker)’로 만든 것은 웃음으로 포장된 페이소스의 감칠맛이다.

 

닐 사이먼은?

닐 사이먼(Marvin Neil Simon, 뉴욕 브롱스 태생, 1927~ )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흥행력 있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1980~90년대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었듯, 닐 사이먼은 그의 첫 브로드웨이 히트작인 <나팔을 불어라(Come Blow Your Horn)> 이래 흥행 보증수표로 일컬어졌다. 특히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그의 이름 자체가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의미로 쓰일 정도였다. 그가 쓴 연극과 뮤지컬은 수십 개의 나라에서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각광을 받았고, 대부분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에 의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또한 닐 사이먼은 극작가로서 유일하게 자신이 쓴 네 편의 작품이 동시에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상연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닐 사이먼은 현재 작가, 프로듀서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고, 브로드웨이에서 현재 <헤어스프레이>를 공연 중인 닐 사이먼 극장의 소유주인 동시에 월넛 스트리트 시어터 재단의 명예 이사로 있다. 1946년부터 2년간 뉴욕대학과 덴버대학에 다녔지만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호프스트라 대학과 윌리엄즈 컬리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맨하탄의 워너 브라더스 사에서 우편분류사원으로 일하던 닐 사이먼이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초에 ‘쇼 중의 쇼(Your Show of Show)’의 방송 대본을 쓰면서부터다. 사실 그 이전에도 사이먼은 나이트클럽의 스탠딩 쇼의 작가로 일했고, 라디오 스크립터를 거쳐 무대 작업도 했었다. <캐치 어 스타(Catch a Star)>(1955), <뉴 페이스(New Face)>(1956)와 같은 작품을 통해 그의 재능을 드러내기도 했다. ‘쇼 중의 쇼’는 당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코미디언 시드 시저(Sid Caesar)가 사회자로 출연하고, 멜 브룩스, 우디 알렌, 칼 라이너 등이 작가로 참여했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닐 사이먼은 50년대 후반에는 ‘필 실버스 쇼(Phil Silvers Show)’의 작가로도 활동했고, 60년대부터는 연극, 뮤지컬, 영화,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쇼 중의 쇼’와 ‘필 실버스 쇼’를 거치면서 사이먼은 말초적인 개그로 반응을 이끌어내기보다 상황과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방법들을 익히게 되었다.

그는 다작을 했으며, 가벼운 코미디인 『맨발로 공원을(Barefoot in the Park)』(1963), 『희한한 한쌍(The Odd Couple)』(1965)에서부터 자전적이고 비교적 어두운 작품인『챕터 투(Chapter Two)』(1977), ‘유진 3부작(The Eugene Trilogy)’)까지 아울렀다. 또한 뮤지컬 코미디인『리틀 미(Little Me)』(1962), 『듀엣(They`re Playing Our Song)>』(1979), 『스위트 체러티(Sweet Charity)』(1969), 『약속, 또 약속(Promises, Promises』(1968), 『굿바이 걸(The Goodbye Girl)』(1993)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썼다. 그리고 그의 연극과 뮤지컬은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졌다. 간혹 자신의 시나리오를 무대로 옮긴 경우도 있다. 한편, 그의 작품이 안정적인 히트를 기록하고 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그의 영화 시나리오는 퀄리티에 있어서 작품마다 큰 격차를 보이기도 했다.

 <나팔을 불어라> 브룩스 엣킨즈 극장 공연 당시             닐 사이먼의 이르이 브로드웨이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1년에 연극인 <나팔을 불어라>가 브룩스 앳킨슨 극장에서 오픈하여 총 678회 공연하면서이다. 첫 번째 작품이 막을 내리고 6주 후에는 시드 시저가 주연한 뮤지컬 <리틀 미>(1962)가 개막되었을 때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의 경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토니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그 이듬해 연극 <맨발로 공원을>(1963)이 1,530회를 공연하며 그야 말로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맨발로 공원을>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브로드웨이에서 롱런한 작품이기도 하며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된 바 있다. 닐 사이먼은 상복(賞福)도 어느 극작가보다 많았다. 연극 <희한한 한쌍>, <빌록시 블루스(Biloxi Blues)>(1985)로 토니상을, <로스트 인 용커스(Lost in Yonkers)>(1991)로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퓰리처상을 동시에 받는 기염을 토했다. 자신의 희곡을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한 영화 <희한한 한쌍>(1968), <선샤인 보이즈(The Sunshine Boys)>(1975), <캘리포니아 스위트(California Suite)>(1978) 등으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이후에 뮤지컬화 된 영화 <굿바이 걸>(1977)로는 골든글로브의 최우수 각본상을 탔다. 2006년에는 ‘유머’를 통해 미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인사에게 수여하는 ‘마크 트웨인 상’을 받으며 다시 한 번 브로드웨이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뉴욕의 서민들 혹은 루저들의 고민과 웃음

뉴욕에서 태어난 닐 사이먼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자신의 주변 환경을 작품 속에 다양한 방법으로 반영했다. 그의 작품에서 배경이 되는 곳은 동시대 뉴욕의 고층 건물, 허름한 싸구려 아파트, 너저분한 뒷골목이다. 그리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혹은 ‘루저’에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기도 한다. 닐 사이먼은 이성에게 연거푸 거절당하고, 꿈을 이루고 싶지만 여건이 좋지 않은 그들의 일상적이면서도 진지한 고민들을 유쾌한 웃음에 녹여낸다.

국내에서 닐 사이먼의 작품 중 연극과 뮤지컬로 가장 많이 각색, 공연되어 온 희곡 『굿 닥터』에는 사소한 일에 집착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소심쟁이’들이 등장한다. 인물들은 상사의 머리에 재채기를 한 일 때문에 집착을 하다가 종국에 자살을 하고, 이 하나를 뽑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굿 닥터』는 체홉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만큼 희비극적인 속성을 강하게 지니지만, 에피소드 중간중간에 사회자가 등장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는 인물들이 벌이는 해프닝들을 따뜻하고 위트 있게 정리하면서 무게감을 덜어낸다.

닐 사이먼의 뮤지컬들의 경우 괴이한 상황과 재치 넘치는 언쟁이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속에 ‘그렇고 그런’ 서민들의 애환을 폴어 놓았다. 국내에서 최정원, 남경주/성기윤 주연으로 두 차례 공연한 바 있는 뮤지컬 <듀엣>에는 가난한 나머지 배우인 친구의 무대 의상을 빌려 입고 다니는 작사가 쏘냐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이 추종하던 작곡가 버논과의 첫 만남에 <벚꽃 동산>의 의상을 입은 낯선 모습으로 나타나고, 데이트에 가야 할 때 <피핀>의 왕비 파스트라다 의상을 떠올린다. 뮤지컬 <굿바이 걸>(1993)에는 매번 남자에게 차이기만 하는, 어린 딸을 둔, 한물 간 무용수인 폴라가 전 남자친구의 집에서 쫓겨나가지 않기 위해 ‘전 남자친구의 친구’인 엘리엇과 기이한 동거를 시작한다. 엘리엇 역시 오프 브로드웨이의 배우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 온 ‘대단하지 않은’ 배우다. 밥 파시의 안무가 돋보이는 뮤지컬 <스위트 채러티>에도 ‘굿바이 걸’이 등장한다. 채러티는 카바레에서 댄서로 일하는 하층 계급의 여인이다.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차이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자신의 직업을 속이고 ‘바른생활맨’을 사귀게 되는데, 결국 모든 것이 밝혀지고 남자는 떠나간다.

한편, 이 작품들은 대중희극이라는 정체성을 확인시키며, 해피엔딩 혹은 희망찬 비전을 보인다. 쏘냐는 작사가로 성공하여 떼돈을 벌고, 더 이상 무대 의상을 입지 않게 된다. 사랑에 있어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낭만적이기만 했던 폴라는 엘리엇과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굿바이 걸’을 면한다. 그리고 그녀와 사랑을 이루는 엘리엇은 괜찮은 연극에 출연 제의를 받는다. 채러티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와의 해피엔딩을 맞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억눌러 왔던 삶의 무게와 슬픔을 초월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작품 속에 담다

닐 사이먼의 초기 작품들은 평단으로부터 ‘너무 가볍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가 가족들의 모습, 유태계 미국인으로서 겪은 자전적인 내용을 작품에 담기 시작하자, 한층 깊이감이 생긴 그의 유머에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브라이튼 해변의 기억(Brighten Beach Memoirs)』(1983), 『빌록시 블루스(Biloxi Blues)』, 『브로드웨이 바운드(Broadway Bound)』(1986)로 구성된 ‘유진 삼부작(Eugene Trilogy)’으로 작품으로 사이먼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퓰리처상을 동시에 받게 만든 『용커스에서 길을 잃다』도 ‘유진 삼부작’의 후속작이다.) 사이먼의 작품들에서 인물들이 괴상한 관계에 휘말리며 서로 언쟁을 벌이는 모습은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데 보통 작품이 시작할 때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복잡한 상황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곤 하는데, ‘유진 삼부작’에서는 전사를 지닌 인물들이   형 대니 사이먼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이 닐 사이먼

처음부터 그로테스크한 상황 속에서 정서적인 장애를 표출한다. 사이먼은 인물들에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반영했는데, 때문에 이 작품이 진정성을 지니고 한층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도 그는 자신의 경험을 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 왔다. 그가 겪었던 일들을 희화화시키곤 했는데, <듀엣>에는 닐 사이먼이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힘든 마음을 극복하며 새로운 결혼생활을 꾸리던 상황이 그려진다. 1973년, 사이먼은 댄서 출신이었던 첫 번째 부인인 조안 바임을 잃게 된다. 이후 그는 배우 출신인 마샤 메이슨과 재혼을 하는데, 그 무렵 사이먼은 당시의 상황을 극화한 희곡 『챕터 투』(1977)를 쓴다. 그리고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 바로 <듀엣>인 것.(닐 사이먼은 다섯 번 결혼했는데, 두 번째 부인인 마샤와는 두 번 결혼했다.)

사이먼의 인물들에 영감을 준 존재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여덟살 위의 친형인 대니이다. 그는 사이먼이 ‘쇼 중의 쇼(Your Show of Show)’의 작가로 일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준 사람이기도 하다. <희한한 한쌍>에는 대니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니는 이혼한 후 다른 이혼한 남자와 함께 살았는데, 두 남자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이 작품에서 유머러스하게 반영되어 있다. 사실 이 작품은 대니가 처음에 혼자서 집필하기 시작했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사이먼에게 넘긴 작품이었다. <희한한 한쌍>은 1965년에 막을 올리면서부터 브로드웨이를 강타했고, 잭 레먼과 워터 매튜가 주연한 1968년의 영화 버전도 화제를 몰고 왔었다. 나아가서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인기를 얻었다.



그가 지닌 ‘독보적인’ 상업성

“사이먼은 현대 미국인의 고독과 소외와 좌절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지녔으면서도 삶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재치 있는 유머와 희극적 상황을 꾸며내고 종국에 가서는 해피엔딩을 도출해 냄으로써 통속극의 작가가 되는 길을 열었다. … 그의 희곡은 기성의 가치관에 안주하는 중류 계층 관객들에게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을 선사함으로써 그들과 타협하고 있지만, 그 해피엔딩이 작위적이고 안이하게 조작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제기된 문제들을 말끔히 해소시켜주는 근원적 처방으로 느껴지지도 않게 함으로써 관객들의 공감을 상당 부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영미 희곡의 이해』에서 저자 정진수는 닐 사이먼의 작품들을 비롯한 상업 예술이 지닌 속성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대중문화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문화 간에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타협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상업성’을 지녔다는 것은 중산층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하층 계급의 저항적인 메시지를 반영하며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른다는 의미이다.

비주류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내던 대안 연극이 꽃피기 시작했던 1960년대, 닐 사이먼은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의 작품에서는 어떻게 보면 하찮아 보이는 상황에 대해 언쟁을 하는 인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언쟁을 하는 그들의 상황이 안타깝고 괴이함에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상황’보다 ‘언쟁’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작가의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부싸움 중 부인이 꽁꽁 언 양고기를 자신에게 던지자 상황의 심각함과 우스꽝스러움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마치 일상에서 연극을 하듯 자신의 상황을 관찰하는 것처럼 그의 인물들은 언쟁을 하며 자신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을 자의식적으로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이루어진 소외효과가 관객들에게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동시에 웃음 짓게 만든다.

PBS의 ‘American Masters’ 시리즈의 ‘닐 사이먼 편’에서 사이먼의 성공은 미국의 정신을 사실적으로 폭로하는 그만의 방법에서 기인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닐 사이먼이 마크 트웨인 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유머에는 미국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유태계 미국인인 닐 사이먼은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냉철하게 묘사하되, 직설화법이 아닌, 로맨스와 유머의 색깔로 맛깔스럽게 포장한 ‘세상에서 가장 상업적인’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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