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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PS] ‘역사’라는 식지 않는 감자 [No.146]

글 | 송준호 2015-12-05 1,882
매거진 PS는 지난 호에 지면의 한계 혹은 여러 여건 등으로 싣지 못했거나 아쉬웠던 혹은 더 담고 싶었던 뒷이야기를 담는 섹션입니다. 해당 기사 원문 및 주요 내용은 <더뮤지컬> 11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국립극장

최근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역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일 겁니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역사는 핵심적인 콘텐츠입니다. 특히 공연계에서 역사 재해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업이지요. 그래서 [더뮤지컬]도 지난 10월 호에서 역사 판타지 문제를 다룬 바 있습니다. 당시 특집 면 패널로 참여했던 한아름 작가는 그 작업을 기반으로 공연계에서 탄탄히 입지를 다지고 있는 분입니다. 지난 호에서는 창극 <아비, 방연>의 작가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특집 면에서도, 창작자 인터뷰에서도 그에게 공히 궁금했던 것은 근현대사에 대한 조명 문제였습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창작자로서 동시대의 역사를 해석하는 일은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찌 보면 예술가로서의 역량보다 사상 검증의 시선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한아름 작가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을지 몰라도 정신문화 측면에서는 개발도상국에 가까운 것 같다고 진단합니다. 아직까지도 근현대사가 국민 여론과 감정에서 정리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이유입니다.

돌이켜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정체성의 혼란과 민족정신에 대한 말살을 겪었고, 주체성을 다시 회복하려는 찰나 한국 전쟁이라는 사상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다음에는 남북이 나눠지고 정치적인 프레임 안에서 분열을 계속해 지금은 한국이 남북뿐만 아니라 좌우로도 나뉜 상태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사상을 떠나 성별과 나이와 계층으로 온 나라가 조각 나 있기까지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힘없는’ 작가가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은 확실한 검증이 불가능한 고대사부터 역사적 맥락을 유연하게 재고할 수 있는 조선 중후반부 정도까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장르 불문 ‘역사 재해석’의 시도에서는 왕과 권력자 중심의 기존 주류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소시민적인 민중의 이야기가 중심에 서고 있습니다. 한아름 작가와 서재형 연출 콤비가 야심차게 선보이는 창극 <아비, 방연>도 ‘금부도사 왕방연’이 아닌, ‘딸 가진 어느 아버지, 방연’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창극이라는 낯선 장르는 ‘소시민’과 ‘부성애’라는 동시대적인 코드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올 예정입니다. 

흔히 좋은 예술은 어려운 시대에 더 많이 탄생한다는 농을 듣곤 합니다. 사회적 금기를 심도 있는 비유로 우회해 표현하는 예술가의 고민이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선진국을 자처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외부의 시선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은 확실히 서글픈 현실입니다. 동시대의 역사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에서 다양한 담론을 빚어내며 또 다른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세상은 아직도 요원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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